조지호 경찰청장이 '12·3 불법계엄 사태' 당일 윤석열 대통령과 보안처리된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 청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6차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고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이 지시가 비화폰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 3시간 전 윤 대통령이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안가로 불러 계엄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을 한 장씩 건넨 사실도 드러났다. 비화폰과 계엄지시 문건이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거란 분석이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13일 "조 청장이 계엄 당일 사용한 비화폰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수본은 두 차례에 걸친 조 청장 조사에서 비화폰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틀 전인 11일 청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해 비화폰을 확보했다.
비화폰은 도감청·통화 녹음 방지 프로그램이 깔린 보안 휴대폰이다. 시중 스마트폰과 외형은 같지만 제작 단계에서부터 보안 장치와 암호 기술을 적용한 특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다. 인터넷, 와이파이, 테더링, 이동식저장장치(USB) 기능이 차단돼 자료 외부 유출이 불가능하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 특정 인트라넷만 사용 가능하다.
조 청장의 법률 대리인인 노정환 변호사에 따르면 계엄 당일 밤 11시 37분쯤 윤 대통령은 조 청장에게 비화폰으로 직접 6차례 전화를 걸어 의원 체포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끊었다가 다시 거는 방식이었으며 "계엄법 위반이니 체포해라" "잡아들여"란 취지였다는 게 노 변호사 얘기다. 국수본은 통화기록 등이 남아 있는 비화폰 서버 위치 파악에 나선 상황이다. 김 서울청장은 조 청장과 달리 비화폰은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 사이의 소통은 개인 휴대폰으로 이뤄졌다.
국수본은 윤 대통령이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에서 한 장씩 건넸다는 계엄지시 문건의 행방도 추적하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계엄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북세력'이란 말을 자주 써가며 조 청장에게 문건을 건넸다고 한다. 문건엔 계엄 후 접수할 기관으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더불어민주당사, MBC, 유튜버 김어준씨가 있는 여론조사 '꽃' 등 10개 기관이 표기됐다. 노 변호사는 "더 예민한 내용이 하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어떤 기관인지는 함구했다.
국수본은 이 문건이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다만 김 서울청장이 받은 문건도 조 청장과 같은 내용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국수본 설명이다. 조 청장은 해당 문건을 공관으로 돌아와 찢어버렸다고 진술했고, 김 서울청장 역시 현재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수본은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증거인멸 우려를 적시했다. 아울러 공관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과 청장 부속실 관계자 조사 등을 토대로 당시 '안가 회동의 전말'을 밝히기 위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의 영장엔 '피의자 윤석열'이 적시됐다. 국수본은 대통령실 압수수색 재집행뿐 아니라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나아가 윤 대통령에 대한 출석요구와 체포영장 신청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사흘 전 "요건에 맞으면 체포할 수 있다"는 방침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국수본은 이날 구속된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 조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국수본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 4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고 한덕수 국무총리 등 나머지 6명과는 일정을 조율 중이다. 추경호 원내대표에게도 출석 통보를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변에 경찰병력을 배치한 경기남부경찰청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