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으로 책상 끄트머리를 짚으면서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전·현직 검사들은 TV에서 이 자세를 보면 과거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한다. 업무 보고를 받던 중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렇게 자세를 고쳐 앉았고, 이런 자세가 나오면 좀체 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저런 자세를 취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디 한번 얘기해봐"라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팀장 때도, 검찰총장 시절에도, 대통령이 돼서도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이 자세를 보여줬다.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한 윤 대통령을 상징하는 모습인 셈이다.
12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지켜본 검찰 출신 인사들은 입을 모아 '검사 윤석열의 자기 확신이 극단적 형태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29분 담화 내내 윤 대통령은 시종일관 야당을 비난하면서 계엄 선포는 야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였다고 강변했다. 긴 시간을 들여 계엄 선포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과는 담화 마지막에 형식적으로만 했다. 국가 수반이 아니라 마치 피의자를 몰아붙이던 검사가 재판부에 낼 의견서를 읽고 있는 모양새였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사건' '사법농단' '국정농단' '조국 사건' 등을 지휘할 때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적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전직 검사는 "검사 시절부터 자기 확신이 워낙 강했는데, 지금은 심각한 편집증에 빠진 것 같다. 어떻게 유튜브 방송에 나오는 (계엄에 대한) 반응들을 대통령 담화에서 말하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도 "검사 시절엔 도무지 반대 의견을 듣지 않다가도, 후배들이 계속 설득하면 마음을 돌린 적도 있었다"면서 "대통령이 된 뒤 2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사 윤석열'의 왜곡된 자기 확신이 대통령 권한과 합쳐지면서 극단적 결과로 이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 마음에 '내가 대통령이 됐는데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야당에 당해야 하는가'라는 적대적 세계관이 형성된 것 같다"면서 "과잉신념과 분노조절 실패로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와 형사소추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보다는 싸움을 이어갈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흥분한 윤 대통령의 막무가내 태도에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손쓸 새가 없었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윤 대통령을 잡기 위한 수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윤 대통령도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였다'는 주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여, 아노미 상태는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