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30대 초반 직장인 여성 A다. 회사 회식 후 직장 동료 B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다음 날 회사와 수사기관에 신고했고, 가해자 B에 대해 회사의 징계 절차 및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나는 회사의 권고로 잠시 휴직한 뒤 병원에 다니며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최근 익명으로 기업 내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에 나의 성추행 피해 사건과 관련한 글이 게시됐다. 이 글에는 △회사 회식이 끝난 뒤 성추행당했고 △회사와 수사기관에 가해자를 신고했으며 △가해자가 대기발령 및 징계 절차에 회부된 사실 등 구체적인 사실이 적시됐다.
“A가 B에게 ‘먼저 한잔 더 하자’고 했다” “회사에 거액의 위자료와 특혜성 인사 조치를 요구한다” 등 허위 사실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다른 여직원 C가 이 내용을 복사한 뒤 회사 여직원 단톡방(단체 채팅방)에 그대로 가져다 올리면서 피해는 더 커졌다.
여직원 C에게 “사실도 아닌 글을 왜 단톡방에 올려 공유하느냐”고 항의했지만, C는 “그냥 이런 글이 있다고 정보 차원에서 올린 것이지, 이 글이 사실이라고 한 적은 없다. 항의하려면 해당 익명 앱에 하라”며 적반하장이다. 사과도 없거니와 단톡방에 올린 글도 삭제하지 않는다.
성범죄 피해자인 나로서는 가뜩이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데, C로 인해 우울증 치료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C를 처벌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A: 최근 SNS, 애플리케이션에서 ‘익명성의 자유’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SNS나 메신저 등은 글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내용을 더 쉽고 빠르게 유포·확산시키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도 훨씬 더 크다. 특히 A 같은 사례는 ‘익명성’ 뒤에 숨어 가뜩이나 견디기 어려운 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A씨)에게 더 큰 고통을 가한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 심각하다.
이렇듯 피해의 확산 및 정도가 크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 범죄에 대해 최초 작성자뿐 아니라 이를 무분별하게 퍼 나르는 행위도 엄하게 처벌하는 추세다.
특히 이런 불법 정보 확산의 매개가 되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불법행위에 대해 △충분히 인식 및 예견이 가능하고 △불법 행위를 기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면 민사상 손해 배상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형사상 방조죄 등 매우 높은 수준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법원은 타인을 명예훼손 또는 모욕하는 내용의 광고, 게시글, 댓글의 게시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만연히 게시하거나, 명예훼손 또는 모욕이 명백한 글을 삭제하지 아니하고 방치하는 경우에도 해당 매체의 사업자 또는 운영자에게 명예훼손의 방조 책임을 인정하는 등, 온라인 사업자의 법적 의무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증거 수집(스크린샷, 댓글 기록 등)은 필수다. 인터넷으로 신고(경찰청 홈페이지-사이버안전지킴이)할 수 있고,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고소장을 제출해도 된다.
A씨 사연의 경우, 먼저 익명 정보 앱 게시판에 해당 글을 올린 첫 게시자의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여기에 적시한 내용이 허위 사실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정보통신망법 제70조)하는 등 가중 처벌된다. 그러므로 익명 게시판에 게재된 해당 글의 경우 사실과 허위 사실이 함께 기재돼 있으므로 게시자는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게시글을 복사해 단체 대화방에 게시한 여직원 C의 행위는 어떨까?
법원은 이런 행위 역시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근 위 사건과 비슷하게 익명 게시판에 게시된 글을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가 기소(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된 피고인에 대해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물을 보고 사실관계에 대하여 전혀 확인하지 않은 채 단체 대화방에 게시한 점 △게시글의 일부 내용이 허위라는 점 등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인 측은 △게시글 속 피해자는 익명으로 처리했기에 특정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직접 게시글을 작성한 것이 아닌, 인용하거나 소개한 것에 불과했으며 △직장 동료들에게 게시글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가치중립적 의도만 있었을 뿐 명예훼손의 고의나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처음 허위 글을 작성해 게시하거나 △허위 글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복사해 게시해도 모두 정보통신망법상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 등) 청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글을 게시한 자들 및 해당 게시판의 운영자 또는 사업자에게도 해당 글의 삭제는 물론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타공인 IT 강국이다. 우리의 경쟁력이자 자랑이지만 한편으로 그 이면에는 이른바,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등 온라인상의 익명성을 이용한 범죄 발생률이 급격히 늘고 있고 ‘가짜뉴스’가 횡행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등 어두운 면도 있다.
무심코 재미로 옮긴 글이 누군가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할 수 있으니만큼 온라인상에서 글을 게시하거나 전달할 때에는 그 글의 사실 여부 확인과 함께 그 글로 인하여 누군가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지는 않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