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 계엄 선포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실각이 미국 조야에서도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대통령 내란죄 수사와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미국도 손절하는 셈이다. 계엄 국면 초기 불쾌감을 쏟아내던 미국이 윤 정부와의 공식 접촉을 당분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한국 측 대화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한국 내 정치적 절차는 당연히 한국의 법률과 헌법하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을 인정한다는 것은 외교적 수사일 공산이 크다. 미국 CNN방송은 “윤 대통령이 (7일) 탄핵 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그의 정치적 생존은 위기”라고 짚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대통령직은 식물인간 상태”라고 분석했다. 밀러 대변인은 ‘한미 정상 간 소통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백악관이 할 일”이라며 답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탄핵 국면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공식 반응은 줄곧 낙관이다. 이날도 밀러 대변인은 “이 시련과 불확실성의 시기에 우리가 보기를 바라고 지난 며칠간 기쁘게 목도한 것은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이라며 “정치적 이견이 법치주의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다를 수 있다. 9일 윤 대통령이 한국 수사 당국에 의해 현직 대통령 사상 최초로 출국금지됐다는 소식을 전한 미국 언론들은 대안인 ‘한동훈(국민의힘 대표)·한덕수(국무총리) 공동 국정 운영 체제’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WP는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추진하겠다’는 한 대표와 한 총리의 8일 공동 담화 이후 “한국의 통치 체제가 실질적으로 마비됐다”고 진단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한국이 리더십 공백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고 지적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안보를 포함한 양국 간 협의 공백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4, 5일 예정됐던 한미 간 확장억제(핵우산) 회의 및 연습이 무기한 연기됐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방한도 불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측과의 조기 소통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모습이다. 계엄 사태 직후 총대는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멨다. 4일 워싱턴 싱크탱크 초청 대담에서 “심하게 오판했다”는 이례적 표현으로 동맹국 정상을 질책했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다른 행사에서 “TV를 통해 발표를 파악했다”며 윤 대통령의 독단을 우회 비판했다. 이후 표적은 ‘한·한 체제’의 적법성으로 이동했다. 미국 측은 최근 주한 미국대사 등 여러 루트로 임시 리더십이 헌법에 합치하느냐는 취지의 문의를 한국 측에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