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무일푼으로 대규모 임대사업을 벌여 임차인 수백 명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른바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주범에게 법원이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모씨에게 9일 이 같은 징역형과 함께 1억360만 원 추징을 선고했다.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이 징역 10년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다른 혐의(공인중개사법 위반 등)를 합쳐서 형을 정하는 경합범 가중까지 적용한 법정최고형이다. 이 사건 공범인 정씨의 아내 김모씨와 감정평가사인 아들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김 판사는 "정씨 일가는 자기자본 없이 갭투자 방식으로 임대사업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본인 자산이나 채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임대차 비용을 정리하는 경리직원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했다"며 "경제 침체나 정책 변경 등 임대사업에 불리한 리스크 관리 대책을 전혀 마련해 두지 않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무자본 갭투자는 자기자본도 없이 남의 보증금을 받아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김 판사는 그러면서 "임대차 보증금은 서민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으로, 주거 안정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피해자 중 1명은 피고인 범행이 드러난 후 목숨을 끊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어 "남의 돈을 받아 이렇게 사업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피해자들 보증금 수십억 원을 치밀한 계획 없이 양평군 토지 매수, 태양광 사업,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투자하고 별다른 이익도 얻지 못했으며 투자금을 회수하지도 못했다"고 이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꾸짖었다. 또 "개인적 취미를 위해 게임 아이템에 최소 13억 원을 소비한 데 이어 임대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2022년부터 법인카드로 15억 원을 카드깡 하는 등 재산 은닉 정황도 보인다"면서 "피고인을 엄하게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정씨와 그의 아들의 감정평가법 위반(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건물을 감정평가) 혐의에 대해선 평가금액이 높긴 하나 명확하지 않은 점, 감정평가 법인의 심사를 거친 점 등을 고려해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정씨 등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일가족과 임대법인 명의를 이용해 수원시 일대 주택 약 800가구를 취득한 뒤 임차인 51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760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과정에서 총 18개 법인을 만들어 대출금과 임차보증금 합계가 주택 가격을 넘는 이른바 깡통전세를 내놓는 방식으로 대규모 임대 사업을 벌였다. 이들은 2000년대 서울 용산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하면서 번 돈을 들고 수원으로 이주해 7층짜리 다세대주택을 매입하면서 임대업에 뛰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이날 법정에 나온 정씨 일가의 사기 피해자 10여 명은 선고 공판을 지켜보며 "지옥에나 가라"고 소리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