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지 넉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전과 누수 피해에 엘리베이터 운행이나 온수 공급이 수시로 멈추는 것은 물론 주차장은 계속 공사 중이다. 4개월간의 경찰 수사에서도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데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내놓은 긴급 지원금도 바닥을 드러내 입주민들의 막막함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9일 아파트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인천의 최저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 지난 7일 일부 동의 난방이 중단됐고 온수 공급이 끊겼다. 최운곤 피해대책위원장은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엘리베이터 운행이 멈추고 주차를 못 하는 등 주민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특히 3개 동은 그 피해가 넉 달 동안 이어져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피해대책위는 벤츠 코리아를 상대로 물질적·정신적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아파트 화재)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피해가 대부분"이라며 "피해 보상과 관련해 변호사 자문도 받았다"고 전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피해대책위와 별도로 벤츠 측을 상대로 추가 지원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앞서 벤츠 코리아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임을 전제로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을 통해 주민들에게 300만 유로를 기부했다. 그중 주민들에게 전달된 금액은 재단 관리·운영비를 제외하고 41억4,582만 원가량이었는데, 온수기 임대와 누수 탐지 검사, 폐기물 처리 등으로 거의 다 소진된 상황이다.
주민들은 얼마 전 경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벤츠에 면책권을 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달 28일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하면서도 "화재로 차량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등이 손상돼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4개월간의 경찰 수사에서도 차량이나 배터리 결함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벤츠 코리아나 독일 본사 모두 형사처벌은 어렵게 됐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차량이 59시간 동안 미충전 상태로 주차돼 있다가 폭발했는데, 차량 결함이 아니라고 하니 많은 주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오는 11일 오후에 잡힌 벤츠 코리아와의 면담에서 추가 지원금 등 주민 요구 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8월 1일 오전 6시 15분쯤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는 벤츠 EQE350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아파트 주민 22명과 소방관 1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부상했고 차량 87대가 타고 793대가 열손·그을림 피해를 입었다. 또 아파트 배관과 전선이 녹아내리면서 단전·단수 피해가 발생해 주민들이 임시 대피소 등에서 생활하는 불편을 겪었다. 분진으로 가구와 가전제품, 옷 등을 버리는 등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