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에서는 번역가의 전문 지식을 십분 활용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책들이 대거 선정됐다. '감정의 문화정치'는 감정 연구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참조 문헌을 번역했다는 점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국내 인문학자들의 단비 같은 책이 됐다는 평가다.
한국어 전공자와 일본문화 전공자가 함께 번역한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전문성과 가독성을 모두 갖춘 책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번역가가 20년이란 시간을 들여 번역한 왕수인의 '양명평전'은 해당 분야에 심지 곧게 헌신해온 번역자의 정직한 결과물이다.
논픽션인 '비바레리뇽 고원-선함의 뿌리를 찾아서'도 섬세한 번역으로 독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는 국내 최초의 고대 이집트어 원전 번역으로 찬사가 이어졌다. '세상 모든 것의 물질'은 어렵고 난해한 물리학 지식을 독자 눈높이에 맞게 번역한 전문 번역가의 솜씨가 돋보였다.
신경정신과 의사와 영화학자가 풍부한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번역한 '영혼 다시 쓰기'와 '영화, 소리의 예술'은 학술적 성취가 빛나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5000년 책의 역사를 다룬 '옥스퍼드 책의 역사'도 섬세한 번역과 적확한 용어로 원문을 잘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어로 쓰인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은 스피노자 철학을 전공한 번역가가 철학적 개념은 물론,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사례를 탁월하게 번역해 관심이 집중됐다.
▦감정의 문화정치
사라 아메드 지음·시우 옮김·오월의봄 발행
인문학자들이 꼽는 감정 연구와 정동 이론의 필독서다. 페미니스트 독립연구자인 저자가 증오, 공포, 역겨움, 수치심 등 감정을 분석하며 우리를 둘러싼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감정이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유발하는지 보여주는 역작. 번역가는 9년에 걸쳐 원서의 방대한 이론적, 학술적 개념과 저자의 사유를 촘촘히 따라갔다.
▦계급 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샹탈 자케 지음·류희철 옮김·그린비 발행
스피노자의 철학에 입각해 오늘날의 사회적 현상에 관해 고찰한 책이다. 개인의 계급과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저에 능력주의 신화로 환원될 수 없는 성, 인종, 사회적 환경 등 복잡다단한 역학이 작용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스피노자 철학을 전공한 번역가가 철학적 개념은 물론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사례를 매끄럽게 번역했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고영진, 임경화 옮김·푸른역사 발행
북한 철자법의 기초가 된 '조선어 철자법'의 초안을 만든 북한어의 설계자이자 10개 국어를 구사했던 언어 천재 김수경의 삶과 성취를 다뤘다. 일본 학자가 남북한 통틀어 20세기 최고의 국(언)어학자 중 한 명인 그를 통해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을 거쳐 분단 이후 북한의 학문사를 들여다 본다.
▦비바레리뇽 고원-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매기 팩슨 지음·김하현 옮김·생각의힘 발행
인류학 연구서이자 홀로코스트에 관한 역사서. 프랑스 중남부 비바레리뇽 고원 주민들은 1939~1945년 나치 점령으로 쫓겨온 수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그 대가로 마을 사람들이 나치에게 끌려갔고 목숨을 잃었다. 한 공동체 전체가 합심해 커다란 위협을 무릅쓰고 행한 일을 토대로 '선함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돌아본다.
▦세상 모든 것의 물질
수지 시히 지음·노승영 옮김·까치글방 발행
수많은 실험물리학자들의 생생한 연구 현장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리학자로서 가속기를 연구하는 저자는 스마트폰은 물론,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거나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거나 병원에서 X선이나 MRI로 검사를 받을 때,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입자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음을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한다.
▦양명평전(전 3권)
수징난 지음·김태완 옮김·역사비평사 발행
'양명학' 창시자 왕수인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저자는 역사적 인물을 사람, 문화, 사회라는 유기적 계통으로 연구해 당대의 사회적 배경부터 인물의 내면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2015년에 출간된 '주자평전'과 함께 2,8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번역에 20여 년을 바친 번역가의 뚝심이 빛난다.
▦영혼 다시 쓰기
이언 해킹 지음·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 발행
'현대 사상의 거인'으로 평가받는 캐나다의 철학자 이언 해킹이 다중인격을 주제로 쓴 고전이다. '다중인격이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이 학계의 뜨거운 쟁점이 된 시기, 그는 다중인격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대신 영혼이 종교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되짚는다.
▦영화, 소리의 예술
미셸 시옹 지음·이윤영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
영화에서 소리가 지닌 중요성에 비해 그에 관한 연구는 영상에 밀려 부차적으로 다뤄져 왔다. 작곡가, 음악학자이자 영화 이론가인 저자가 소리의 관점에서 영화사를 다시 쓴다. 영화와 소리에 관한 749편의 풍성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검토한다. 소음부터 침묵까지 영화 속 소리의 차원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
제임스 레이븐 외 지음·홍정인 옮김·교유서가 발행
서지학, 필사, 인쇄, 독서 문화사,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학자 16인이 모여 책의 5000년 역사를 집필한 역작이다. 출판이 위기에 빠진 시대에 오히려 책의 영속성을 환기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변혁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
유성환 옮김·휴머니스트 발행
4000년 전 고대 이집트 귀족, 시누헤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삶과 욕망을 생생하게 전해 문학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미국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문명을 가르치는 저자가 꼼꼼하게 번역하고 해설했다. 국내 최초 이집트어 원전 번역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