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보수 진영이 한국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를 계기로 '헌법 개정론'을 퍼트리고 있다. 비상사태 시 정부 권력을 대폭 강화하는 '긴급사태 조항'을 헌법에 담자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에선 "한국 상황은 오히려 정부 견제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일본 사회의 개헌 논쟁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극우·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이후 엑스(X)에 '긴급사태조항 개헌'을 주장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전 대표는 4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일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긴급사태 조항을 준비해야 한다"고 썼다. 국회 등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도 함께 올렸다.
국민민주당의 간노 시오리 전 중의원도 X에 "긴급사태 조항이 없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며 동조했다. 다른 정치인들 역시 '긴급사태 조항'에 해시태그(#)를 단 글을 올리는 등 온라인상에서 개헌 주장은 확산하는 모습이다.
긴급사태 조항은 국가 비상 상황 때 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대규모 자연재해·테러·감염병 확산 등의 위기 시 내각이 국회 대신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긴급정령'이 발동되는 내용이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물론,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범보수 정당 모두 찬성한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현직 시절인 9월 말, 자민당에 개헌 작업 준비를 지시했고,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도 긴급사태 조항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절대 불가'로 맞선다. '한국의 계엄령이나 다름없다'는 이유다. 중의원 헌법심사회장인 에다노 유키오 전 입헌민주당 대표는 한국 상황을 거론하며 "비상사태라는 이름으로 헌정 질서를 정지시키는 건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구실"이라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대표도 "자민당 등이 도입하려는 긴급사태 조항은 한국 같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공산당, 레이와신선구미, 사민당 등 진보 야당들은 긴급사태 조항 도입은 물론, 아예 개헌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은 일한(한일) 관계 개선을 한국의 국익이라는 신념으로 추진했고, 그런 윤 대통령 노력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일 관계 개선 기조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탄핵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을 사실상 감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