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뉴스를 보느라 한숨도 못 잤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꿈을 꾼 건가 싶다."
4일 새벽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41)씨는 연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너무 황당하다"며 "중학생 아들도 잠이 안 온다며 함께 TV를 봤는데,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가 해제안를 가결해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이날 오전 출근길에서 만난 시민들은 모두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당혹스러워하는가 하면,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힘이 있어 이 정도로는 안 무너지는 나라"라며 안도하기도 했다. 당장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반응도 나왔다.
영등포역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51)씨는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며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자신에게 반대한다고 종북으로 몰고 군대만 동원하면 다 되는 줄 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우(32)씨도 "네이버, X(옛 트위터) 등을 검색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계속 찾아봤다"며 "예전 계엄 때 사진도 찾아봤는데 경제 상황이 가장 걱정돼 기가 막히다"고 토로했다.
일찍 잠들었다가 일어나 간밤의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시민들도 있었다. 이진홍(71)씨는 "어젯밤 오후 9시쯤 잠에 들어서 새벽 6시에 일어나 (계엄령 소식을) 알게 됐다"며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단체 메신저방 상황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에 이날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특히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둔 부모들은 심란한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 직장인 백모(51)씨는 "아들이 현역 군인인데,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 걱정된다"며 "휴가 나간 아이들은 복귀 명령이 떨어졌고, 오늘 제대하는 친구들은 전역이 미뤄졌다는데 전방 사단은 더 비상일 거라 답답하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영화 '서울의 봄'이 연상됐다는 박모(51)씨는 "가장 먼저 군대에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며 "TV 속 군인들도 우리 아이 같아 가슴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과거 계엄을 겪었던 중장년층들은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다. 베트남에서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는 허모(55)씨는 "어렸을 때가 생각나 어안이 벙벙했다"며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고 허탈해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대학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3년째 거주 중인 미얀마 국적 A(32)씨는 "편의점에서 자정부터 새벽까지 일하는데 불안해서 계속 뉴스를 봤다"며 "미얀마는 계엄이 있던 국가라 익숙하지만 한국은 미얀마와 다르게 국민들 힘이 강해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