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이 기업·단체의 정당 후원 금지 여부를 두고 시끄럽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집권 자민당 계파 비자금 스캔들'을 반면교사 삼아 기업·단체가 정당에 후원하지 못하도록 정치자금규정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반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자민당은 후원 금지에 반대하면서도 역풍을 우려해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3일 일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전날 중의원 정당 대표 국회 질의에서 "자민당은 (기업·단체 후원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이 피해야 할 것은 후원금으로 정책이 잘못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정치자금 개혁의 핵심인 기업·단체 헌금(후원금) 금지 방안을 논의하자"고 말한 데 대해 반대 뜻을 밝힌 것이다. 입헌민주당은 조만간 기업·단체의 후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안을 일본유신회, 공산당 등 다른 야당과 공동 발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자민당이 기업·단체 후원 금지를 반대하는 것은 후원금 대부분이 자민당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비자금 스캔들로 자민당 비판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계파 일부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거둔 후원금을 비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거센 비판 여론에 연임을 포기했다. 정권을 물려받은 이시바 총리가 지난 10월 27일 총선에서 비자금 스캔들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결과 자민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아사히는 "2022년 기업·단체의 정당 후원금 중 90%가 자민당 몫이었다"며 "자민당의 중요한 자금원이라 당내에서는 후원 금지 방안에 강하게 저항한다"고 설명했다.
자민당은 야당 압박으로 수세에 몰릴 것을 우려해 내년에 결론 내리기로 방침을 굳혔다. 별도 전문가그룹에서 논의하게 한 뒤 이를 참고해 결정하자는 것인데,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게 시간을 끌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은 전날 기자들에게 "연내에 결론을 내기 어렵다면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사히는 "자민당은 기업·단체 후원 문제를 내년에 결론짓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대립에 제3야당 국민민주당은 다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입헌민주당은 입장을 보류한 국민민주당을 설득해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는 "국민민주당은 기업 후원 금지와 관련해 야당 간 의견이 일치하면 법안 처리에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