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없는 야만의 정치… 尹 거부권이 자초한 민주당 탄핵 독주

입력
2024.12.04 04:30
1면
野 최재해 감사원장 등 탄핵안 의결

尹 정부 들어 벌써 18번째 탄핵 폭주
尹도 벌써 25번째 거부권... '정치실종'

더불어민주당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안을 처리한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3명의 검사도 탄핵 대상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4명의 직무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헌법상 직무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장과 수도 서울의 수사를 총괄하는 검사장을 동시에 밀어내는 초유의 사태다.

감사원은 최 원장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둔 3일 저녁 백재명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감사위원으로 전격 임명했다. 최 원장의 직무를 대신해 권한대행을 수행할 조은석 감사위원의 후임으로 백 검사를 서둘러 제청한 것이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조 감사위원은 내년 1월 퇴임한다. 백 검사를 새로 채워넣게 되면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인사가 우위를 점하는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민주당 탄핵 카드에 맞서 윤석열 라인으로 감사원 방어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를 무시하더니, 거대 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마찬가지로 타협을 거부하고 극단의 대립구도에 스스로를 가뒀다는 평가다. 민생을 위한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 정치가 갈수록 포악해지며 끝장을 보려 하고 있다.

尹 정부 들어 탄핵소추안 발의 18번째

윤석열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18번째(탄핵소추안 발의 기준)다. 그 중 이번 탄핵안까지 포함하면 9건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다. 과거 공직자에 대한 탄핵 카드는 대여공세를 위한 정치적 압박 수단에 그쳤다. 그러나 과반 의석을 뛰어넘는 거대야당 민주당이 탄핵안을 실제로 밀어붙이면서, 탄핵 딱지가 붙은 기관마다 수장 공백사태가 도미노처럼 속출하고 있다.

민주당의 탄핵 폭탄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작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검사에 집중됐다. 이태원 참사의 정치적 책임에 따른 이 장관 사례 외에 다른 탄핵 대상자들은 대부분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을 사유로 꼽았다. 민주당은 "국회의 탄핵은 헌법상 권한이고 비정상을 바로잡는 수단"(박찬대 원내대표)이라는 입장이다.

가장 많이 탄핵을 시도한 건 방송통신위원회다. 이진숙 방통위원장까지 총 4번이나 탄핵안이 추진되면서 그사이 3차례나 수장이 바뀌었다.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전 직무대행 등 3명은 모두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되기 전 자진사퇴했다. 현재 방통위원장은 공석인 상태다.

검사들은 민주당의 주요 탄핵 대상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북송금 수사에 관여한 안동완 검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명의 검사(이희동·임홍석 검사는 발의 철회)가 탄핵소추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창수 지검장 등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다는 점이 탄핵 이유로 지목됐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봐주기 수사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급기야 검사 탄핵 추진에 반발해 집단성명을 낸 검사들과 이를 방조한 검찰, 법무부의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집단행동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검사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인데, 국회의 요구로 감사원이 '검찰 감사'에 나서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헌법상 직무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장 탄핵은 '끝판왕' 격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최 원장이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 등의 발언으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탄핵안의 타율은 그리 좋지 않다. 현재까지 5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는데 이미 3명(이상민 행안부 장관, 안동완·이정섭 검사)은 기각 판정을 받았다. 정부여당을 향한 거대 야당의 힘자랑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지점이다.

"尹은 재임 기간 30번 거부권 행사"

대통령실과 여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치적 탄핵"이라고 맹공을 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탄핵 폭주를 감사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주류를 교체하려는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범죄 집단이 범죄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을 동원해 수사 감사기관에 대한 보복과 겁박을 가하는 후진국형 정치테러이자, 조폭정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 말고는 딱히 해법이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처럼 야당은 폭주하고, 여당은 무기력하게 밀리는 상황에 대해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비토크라시 정치'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국회 통과 법안에 25차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국회를 무시하자, 야당은 탄핵 카드를 남발하면서 야만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농업 4법 개정안' 등 5건의 법률안에 대해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재임 2년 7개월 동안 국회로 돌려보낸 법률안만 30개로 늘어난다.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이승만 정부(12년간 45회)에 비해서도 훨씬 잦은 수치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극단적 대치 정치 상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강윤주 기자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