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타 출신 박정권(43) 해설위원의 딸 예서(14·오리온)양이 한국 테니스의 미래를 밝힐 기대주로 쑥쑥 크고 있다.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큰 177㎝의 키에 오빠 선수들과 함께 연습할 정도의 힘도 갖췄다. 지난 8월엔 아빠가 현역 시절 달지 못했던 태극마크를 새기고 14세 이하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국가대항전인 국제테니스연맹(ITF) 세계주니어 파이널스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인천 송도 모나크테니스클럽에서 만난 부녀는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운동 선후배로 함께 미래를 진지하게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활동적인 걸 좋아해 일곱 살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예서양은 “처음엔 수영을 하려고 했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 뒤로 밀렸다”며 “뭐라도 하고 싶어서 생떼를 썼는데, 마침 집 앞에 테니스 코트장이 있어서 엄마가 ‘테니스를 쳐 볼래’라고 권유했다. 몇 번 해보니까 라켓에 공이 맞는 느낌이 좋았고, 공이 네트를 넘어가면 코치님들이 칭찬을 해주니까 재미있었다”고 입문 배경을 설명했다.
대를 이어 운동을 하는 딸을 보며 아빠는 반신반의했다. 박정권은 “3개월도 못 하고 그만둘 것이라고 장담했다”면서 “그런데 하면 할수록 집중도가 높아지는 게 보여 ‘애가 진심이다. 진짜 테니스를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느꼈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대견스러워했다. 이에 예서양은 “매일 훈련하고, 대회에 나가는 게 힘들더라”며 “나보다 더 운동을 오래한 아빠가 대단한 것 같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부녀가 가장 닮은 부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박정권은 “얼굴”이라고 했다. 아빠의 예상치 못한 답에 손사래를 치며 부정한 예서양은 “승부욕”이라고 답했다. 부녀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 김은미씨는 “운동할 때 화를 못 참는 게 똑같다”고 말하자, 박정권은 “운동 선수라면 그런 건 필요하다. 대신 잘 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역 시절 큰 경기에 유독 강해 ‘가을 정권’으로 불렸던 아빠를 잘 알고 있는 예서양은 앞으로 “중요한 순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아빠의 DNA를 이어받고 싶다”고 밝혔다. 2004년 SSG의 전신 SK에 입단해 2019년까지 원클럽맨’으로 뛰었던 박정권은 2009년 플레이오프, 2010년 한국시리즈,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3시즌 연속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우승 반지는 세 개를 꼈다.
박정권은 운동 선배로서 딸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는 “긴장을 거부하지 않되, 밖으로 표출하면 안 된다. 속으로만 담고 있는 선수와 밖으로 내보이는 선수 그 차이로 랭킹이 정해진다. 아빠가 항상 장난식으로 ‘라켓 중심에만 맞혀라’ ‘라인 안으로만 넣어라’고 얘기하는 이유도 그런 과정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결과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다. 긴장될 때 오로지 내 플레이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딸은 진심 어린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을’이 들어가는 아빠와 다른 별명을 갖길 바랐다. 예서양은 “테니스는 대회가 특정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계속 있다 보니까 가을에만 잘하면 안 된다”며 웃었다. 박정권은 “야구도 가을에만 잘하면 안 된다. 가을에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정규시즌 때) 막 허접하지 않았다”고 억울해했다. 별명 얘기가 오가자, 어머니 김은미씨는 야구 포스트시즌에 빗댄 댓글을 봤다며 ‘포시즌 예서’라는 표현을 꺼냈다. 사계절 내내 잘한다는 의미에 예서양은 “나쁘지 않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세계랭킹 1위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가 롤모델인 예서양은 지난해부터 국제 주니어 무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세계 랭킹은 아직 632위지만 장신에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춰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평을 듣는다. 국내 대기업에서 유일하게 테니스단을 운영하는 오리온이 박예서를 영입한 이유도 현재보다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예서양은 “내년에 랭킹을 100위대까지 올리고 내후년 주니어 메이저 대회를 뛰는 게 목표”라며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면 아빠가 없는 걸 갖는 거니까 이뤄내고 싶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보니까 더 잘하고 싶고 자부심이 생기더라”고 소망했다. 딸의 포부를 흐뭇하게 들은 박정권은 “아빠는 학교 대표를 해봤다”며 미소 지은 뒤 “세계의 벽을 한번 뚫어 봐야지. 일단 안 아프고 행복하게 테니스와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