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성향이 무던해요.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상처를 덜 받고 빨리 망각하며 평안을 찾아 헤매죠. 그렇게 무던하게 기다릴 줄 아는 성향이 가수로 25년을 버틴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999년 라틴 댄스 곡 ‘선택’으로 데뷔한 이후 ‘대쉬’ ‘내 귀에 캔디’ ‘총 맞은 것처럼’ ‘사랑 안 해’ ‘잊지 말아요’ 등 댄스와 발라드를 오가며 폭넓은 사랑을 받은 가수 백지영의 말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데뷔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그 당시 제 모습을 보면 표정에 야욕, 욕망이 느껴져 보기 불편하다”며 “절대 그때 영상을 보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백지영이 5년 만에 본업으로 돌아가 2일 새 앨범을 냈다. 5년 만의 앨범인 ‘오디너리 그레이스’에는 타이틀 곡 ‘그래 맞아’와 ‘플라이’ ‘단잠’ ‘숨은 빛’ 등 4곡이 담겼는데, ‘그래 맞아’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덤덤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했다. 그는 “댄스 곡까지 담고 싶었지만 결이 달라질 듯해 발라드로 채웠다”면서 “분위기가 새롭지만 튀지 않고 구태의연하지 않은 곡들”이라고 말했다.
24세에 데뷔했으니 가수로 살아온 시간이 (가수가 아니었던 시간보다 ) 1년 더 많아졌다는 말로 데뷔 25주년 소감을 담담하게 밝힌 백지영. 그는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굉장히 요동쳤던 그래프가 완만해지고 평온해져가는 시기인 듯하다”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이를 키우며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5년 중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기로는 ‘내 귀에 캔디’를 부르던 2009년 즈음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몸에 쌓여 있는 독소가 매일 느껴지는데, 그때는 너무 가볍고 상쾌해 디톡스가 전혀 필요 없던 상태였다”면서다.
“아이돌 가수 느낌이 나는 댄스 곡은 내게 맞지 않은 옷을 괜히 입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거절한다”는 백지영은 정통 트로트를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가수 윤종신씨 영향이 커요. 고전적인 정통 트로트 곡을 하나 제게 들려줬는데, 나중에 이미자 선생님 같은 깊이가 된다면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로서 목표는 오래도록 무대에 서는 것이다. “예전엔 머리가 희끗해지면 그만둬야지 생각했어요. 이제는 이미자, 패티김, 나훈아 선생님들 정도의 나이까지 무대에 설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계속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