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근에서 무인항공기(드론)를 띄워 우리 군사시설과 미 항공모함 등을 불법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이 ‘공산당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폰에서는 군사시설 관련 사진 500여 장과 중국 공안 관계자 연락처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들을 간첩죄로 처벌할 순 없다. 현행 간첩죄는 ‘적국’인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간첩죄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나 국회 개정안 처리는 야당 비협조로 또다시 물 건너갈 판이다.
1953년 만들어진 형법 제98조 간첩죄는 그동안 개정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93년 공군전력배치 현황이 주한일본대사관에 넘어가고, 2018년 국군정보사령부 군사 기밀이 중국으로 유출됐을 때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어 가벼운 처벌로 끝났다. 올해도 군 정보사 비밀요원 신상이 중국에 노출됐지만 간첩죄로 물을 순 없었다.
더구나 안보와 경제가 하나가 되면서 외국 산업스파이의 활동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올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사례만 25건에 달한다. 이 중 중국으로 흘러간 게 18건이다. 국가핵심기술 유출도 10건이나 된다.
최근 중국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중국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하던 한국인을 간첩죄로 구속했다. 기술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유출됐다는 게 중국식 억지다. 그런데 우린 명백한 간첩 행위조차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한 뒤 멈춰 선 상태다. 진작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돼야 했지만 야당의 소극적 태도에 이젠 처리조차 불확실해졌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언제 적 간첩인데 또 간첩 얘기냐”며 부정적 입장을 비쳤다. 그러나 간첩을 잡는 데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경제 안보를 위해선 신속한 법 처리가 생명이다. 누구보다 국익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이 결과적으로 외국만 이롭게 한다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의 직무유기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