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98㎝인 이탈리아 예술가 "무대는 휠체어 없는 자유 느끼는 혁명의 공간" [인터뷰]

입력
2024.11.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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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가이자 안무가 키아라 베르사니
29일부터 '젠틀 유니콘' 등 3편 공연
"세상이 보는 내 이미지, 타인 아닌 내가 결정"

"세상이 바라보는 내 이미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있는 키 98㎝의 이탈리아 공연 예술가이자 안무가인 키아라 베르사니(40)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안무·연출·출연을 모두 맡은 '젠틀 유니콘'이 2019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토털시어터상 무용 부문 1위에 오르고, 2020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현대무용축제에 초청받는 등 장애·비장애 예술계를 통틀어 주목받는 예술가다.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연극상인 '프레미오 우부'에서 35세 이하 최우수 연기상도 받았다.

베르사니는 국내 첫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 모두예술극장의 초청으로 29일부터 대표작 3편 '젠틀 유니콘'(29·30일) '덤불'(12월 4일) '애니멀'(12월 6·7일)을 선보인다. 28일 서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게는 장애인 여성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무대에서 시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도 있다"며 "지난해 홍콩에 이어 서울에서 더 많은 관객과 예술적 감성을 교류하게 돼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르사니에게 무대는 "혁명이 일어난 장소"였다. 19세 때 대학에서 행위예술을 공부하면서 집을 벗어나서도 휠체어 없이 잘 견딜 수 있음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무대에서 나를 '아픈 몸'으로 인식한 사람은 없었고 자유를 느꼈다"며 "행위예술이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사랑에 빠져서 직업이 됐다"고 말했다.


"안무보다 장애에 초점 맞췄던 비평가들"

2018년 초연한 '젠틀 유니콘'은 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부여된 신체가 아닌 스스로 구현한 새로운 개념의 몸을 선보이는 베르사니의 선언적 작품이다. 그는 "타인이 나를 해석하도록 두지 않고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비장애 예술이 주류인 상황에서 베르사니의 예술 세계가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젠틀 유니콘' 이전까지 "비장애 비평가들에게는 장애 예술가를 비평할 어휘와 도구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비평가들은 전문적 예술가로서 내 안무 능력보다 장애라는 몸의 형태에 초점을 맞췄고 2000년대까지도 장애 예술가들의 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무용만의 훈련 규칙이 있다”며 "비평가, 대학과 함께 노력하면서 이제는 적어도 서로 대화는 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베르사니는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공연가가 됐지만 장애인 여성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야 할 정치적 책임감도 절감한다. 그는 "그간 이탈리아에서 장애인 예술가 지원은 치유를 위한 극에 국한돼 있다"며 "전문 예술가 지원을 위해 장애인 예술가들이 조합을 결성해 정부와 대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니스 이우아브대 공연예술 고급과정 강단에 서는 등 교육자로도 활동하는 베르사니는 "예술 공교육도 더 포용적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포부는 이것이다. "어떤 신체를 가졌든 19세 여성이 무용수, 배우, 감독,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자유로이 꾸는 날을 보고 은퇴"하는 것.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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