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처, 미래 공포보다 원인부터… 재앙 부른 서구 제국주의

입력
2024.1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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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육두구의 저주’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기후변화 담론은 미래만을 바라본다. 과학자들은 1.5도, 2도, 3도 상승의 세계를 2030년, 2050년, 2100년으로 연결한 뒤, 폭염과 해수면 상승 그리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며 경고한다. 미디어는 이를 곧잘 공포로 번역하고, 대중은 종말론적인 미래를 떠올린다. 이런 서사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만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진다. 하지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원인을 따져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논픽션 ‘육두구의 저주’ 첫 장면은 1621년 4월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의 한 건물에서 램프가 건물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로 시작한다. 이 소리를 들은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병사들은 원주민이 기습 공격을 시작한 줄 알고, 무기를 들고 닥치는 대로 쏘아댄다. 1만5,000명 원주민 중 90%가 죽거나 달아난 ‘반다 학살’의 시작이었다. 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 원주민을 굴복시켜 노예로 삼고, 향신료인 육두구 농장을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가 왜 시작됐는지 물을 때, 그간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의 과용’ 등 무비판적인 대답에 머물렀다. 하지만 고시는 “자본주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유럽의 식민지 정복과 아메리카 인디언·아프리카인의 대대적인 노예화”라면서 기후위기도 거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유럽인의 ‘테라포밍’으로 지구의 대지는 혁명적으로 변했다. 공상과학소설에서 테라포밍은 지구인들의 삶에 맞게 다른 행성을 개조하는 것이지만, 유럽인에게 테라포밍은 자원을 추출하여 이윤이 산출되는 대지로 바꾸는 것이었다. 전쟁 없는 무역도, 무역 없는 전쟁도 없었다. 유럽인들은 총과 돈을 번갈아들고, 숲을 밀고 농장을 건설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라코타족 연맹을 쳐부수기 위해 유럽인들은 물소를 대량 살상했고, 물소에 기댄 원주민의 삶도 절멸했다. 제노사이드(대량 학살)이자, 옴니사이드(생물 절멸)였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을 바꾸어 지구가 기존의 지질시대인 홀로세에서 벗어났다는 주장이다. 과학자들은 그 시점을 온실가스 농도며 해양 산성화, 생물다양성 감소 등의 수치가 폭증한 1950년대로 보았다.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고시가 책에서 점찍은 16~17세기로 본다. 유럽인이 신대륙을 침략해 대농장을 만들고, 생물종을 인위적으로 이동시키고, 종국에는 온실가스가 폭발하는 폭주 기관차에 인류를 태운 시기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 24일 폐막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줄다리기 끝에 선진국이 2035년까지 연간 3,000억 달러를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에 지원하기로 했다. 사실 선진국은 2009년에 약속한 연간 1,000억 달러 공여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세계가 합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를 외면하고 미래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질시대를 초래한 장본인은 서구 선진국인데, 그저 숫자만을 들이대며 다급하니 미래만 보라고 재촉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대증 요법이다.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