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키우는 데 당력을 모았던 국민의힘이 25일 위증교사 무죄 판결에 제대로 일격을 맞았다. 건진 소득 없이 외려 이 대표를 띄워주고 야권을 똘똘 뭉치게 하는 결과만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집권 여당으로서 비전을 앞세워 경쟁하기보다 상대 약점으로 파고들어 반사이익만 누리려던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이 대표의 무죄 판결을 언급하며 "이 대표 개인의 송사는 개인 이재명에게 일임해 법리적 판단은 사법부에 맡겨두자"면서 "남은 정기국회 운영의 모든 기준점을 민생에 맞춰 재조정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민주당을 향해서는 "이제는 국회로 돌아와 국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고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을 위한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세계 3대 강국 도약 특위’를 띄우고 위원장에 4선 안철수 의원을 임명하는 등 민생에 방점을 찍었다.
국민의힘은 그러나 전날까지만 해도 정상적 국회 운영보다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판결(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이 나온 15일부터 25일까지 국민의힘 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 논평 55건을 전수 확인한 결과, 41.8%(23건)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히 법률가 출신의 당 지도부 인사들은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형량을 공개 전망하는 등 이 대표 때리기에 앞장섰다. 장동혁 최고위원은 징역 1년 6개월~2년, 김재원 최고위원은 징역 1년 6개월,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징역 1년 등에 '베팅'했다. 당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이 대표가 법정 구속이 되더라도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필요 없다는 논리까지 폈다. 결과적으로 모두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 됐다.
한 대표도 다르지 않았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유죄 판결 직후 "반사이익에 기대거나 오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말뿐이었다. 지난 25일 자신을 향한 친윤석열계의 공세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 대표 선고를 앞두고 당이 퀀텀 점프(비약적 진전)로 가냐 마냐 하는 골든타임"이라고 언급했다. 야당 대표의 위기가 곧 국민의힘의 호재라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여당이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의존했다 낭패를 본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에도 민주당은 이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에 반색하며 법원의 영장실질 심사에 잔뜩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예상 외 영장 기각으로 이 대표 때리기는 곧 역풍으로 돌아왔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치의 사법화에 따른 폐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내가 잘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사법 제도를 통해 상대를 코너로 몰고 퇴출시켜서 내 지지를 유지하려는 접근 방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정치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정치권이 판결에 일희일비한다는 자체도 우스운 일이고, 판결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도 한심한 태도"라며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현재 정치권에 어젠다(의제)라고 할 만한 게 있는지 본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