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공급만 되면 그만? 사육 규제 완화에 닭 복지는 어디로

입력
2024.11.25 17:40
농림축산식품부, 사육밀도 확대 2년 유예
동물권 단체 "동물복지 향상 취지와 역행"


정부가 달걀 공급 안정을 이유로 산란계의 사육면적 확대를 유예하고, 시설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을 두고 동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산란계의 복지를 높이고, 질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했던 당초 취지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달 20일 내놓은 산란계 사육밀도 확대 관련 연착륙 방안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①내년 9월 1일까지 산란계 농가의 사육 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 50% 늘리도록 한 시행시점을 2027년 9월로 2년 연장하고 ②케이지 단수를 9단에서 12단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동물단체 "유예기간 연장에 케이지 완화, 동물복지에 역행"

동물권 단체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25일 논평을 내고 "7년의 유예기간을 두었음에도 2년 더 연장하고, 케이지 층수를 완화하는 것은 산란계 동물복지 향상이라는 방침과 정면 배치된다"며 "정부 정책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공장식 축산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지우 카라 활동가는 "유예기간 동안 정부가 사육면적 확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이대로라면 2년 뒤에도 제대로 실행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유 활동가는 "농가들은 시설 개선 대신 원래 케이지에서 1마리씩 빼는 방식으로 기준을 충족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0.075㎡로 늘린다고 해도) 케이지 층수를 올려 사육두수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제도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도 "달걀 공급과 가격 안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정부의 이번 발표는 밀집사육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케이지를 12단으로 높이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농장동물 전문가인 이혜원 경복대 교는 "윗단에 있는 닭의 경우 아픈 개체 관리나 사체 처리 등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제때 관리하지 못할 경우 닭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달걀 공급과 가격 고려할 수밖에 없어"

앞서 농식품부는 2017년 9월 달걀 살충제 성분 검출 사태를 계기로 산란계의 최소 활동 공간을 확보해 동물복지를 높이고, 닭진드기 감염 및 가축 질병 확산 예방을 위해 2018년 9월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2018년 9월 1일부터 신규로 산란계 사육시설을 설치하는 농가는 개선된 사육밀도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그 이전 설치한 농가는 2025년 9월까지 사육밀도를 준수하도록 했는데 이를 2년간 연장한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약 1,000여 개 산란계 농가 중 기존 사육 시설을 유지하는 곳은 절반가량인 약 480여 개 농가에 달한다. 개선된 사육밀도 기준에 맞춰 시설을 개선한 곳은 90여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난각(달걀 껍데기) 표시제상 1번~4번으로 나뉘는 달걀 사육환경은 1번 자유 방목, 2번 평사, 3번 개선된 케이지(0.075㎡/마리), 4번 기존 케이지(0.05㎡/마리)를 각각 의미한다. 이 중 1번과 2번은 동물복지로 분류되지만, 3번과 4번은 배터리케이지(밀집사육)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달걀 공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현재 축사를 늘리거나 땅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다"며 "국내 달걀 수요를 맞추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연착륙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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