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온 양곡관리법에 분노한 농식품부 장관 "재해 수준의 법"

입력
2024.11.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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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가격' 보장하는 양곡법·농안법
'생산 쏠림→가격 하락→보전 부담' 악순환
본회의 통과 땐 '대통령 거부권' 건의 시사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農亡)법." "재해 수준의 법."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상임위원회에서 단독 의결,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양곡법 개정안)' 등 농업 관련 4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송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21일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양곡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양곡의 시장 가격이 평년 가격(공정 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양곡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도 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쌀값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데, 양곡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쌀 가격이 일정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다른 작물로의 전환 유인이 사라지며 공급 과잉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 경우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다.

농안법 개정안도 주요 농산물에 대한 최저가격 보장제 도입이 핵심인 법안이다. 법안 시행 시 ‘가격이 보장되는 특정 품목으로 생산 쏠림→공급 과잉→가격 하락→정부 보전→재정 소요’의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농업경제학회는 농안법이 시행되면 고추·마늘·양파·무·배추 등 5대 채소에 한정해서만 연간 1조2,000억 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함께 상임위 문턱을 넘은 재해보험법 개정안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 대해 할증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험료는 재해 발생 위험도가 높을수록 보험료율이 올라가는데, 위험도와 무관하게 보험료를 책정해 지급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행 보험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재해대책법 개정안은 재해 발생 시 재해 이전까지 투입된 생산비를 보장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송 장관은 “이 법이 통과되면 응급복구비, 생계비를 다 주기 때문에 생육·관리할 유인이 다 없어진다”며 “재해보험과 재해복구대책이라는 근간을 흔드는 법이라 수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송 장관은 28일 본회의 통과 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양곡법은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첫 번째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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