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 낙마’에도 트럼프, 또 새 법무에 ‘충성파’ 팸 본디 지명... 당내 불씨는 여전

입력
2024.1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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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인준 힘들어지자 사퇴… 종용설도
‘성매수 정황’ 보도에 공화당도 등 돌려
‘성폭행 의혹’ 국방 헤그세스 유사 곤경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에 휩싸였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초대 법무장관 지명자 맷 게이츠(42)가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인선에 가장 신경 쓴 법무장관직에서 하필 첫 낙마 사례가 나왔다. 다른 측근으로 빈자리를 즉각 채웠지만 인준에 협조할 것으로 보였던 상원 여당(공화당)이 반기를 든 결과인 탓에, 트럼프의 ‘충성파 기용’ 인사에 추가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쟁에 낭비할 시간 없다”

게이츠는 21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내 인준이 트럼프·밴스 정권 인수의 중요한 과업에 부당하게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 워싱턴(정치권)의 실랑이를 불필요하게 오래 끌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법무장관 고려 대상에서 내 이름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지명된 지 8일 만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법무부는 (정권) 출범 첫날부터 자리 잡고 준비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트럼프는 곧장 사의를 수용했다. 게이츠의 사퇴 발표 직후, 트럼프는 본인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는 매우 잘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매우 존중하는 행정부에 부담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맷의 미래는 밝다”는 덕담을 건넸다.

배경은 희박해진 상원 인준 가능성이었다. 연방 하원의원 시절 게이츠는 2017년 미성년자 성매수 혐의로 연방수사국(FBI) 수사를 받았고, 하원 윤리위원회도 2021년 별도 조사에 착수했다. 보고서 공개 직전 지명이 이뤄졌고, 게이츠는 곧장 의원직을 던졌다. 보고서 공개를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된 만큼 인준권을 쥔 상원의원들은 보고서 열람을 요구했다. 하원 공화당의 방어에도 보고서 내용은 유출됐고, △10대와의 성관계 장면 목격자 증언 △여성 2명 상대 추가 성매수 정황(송금 내역) 등이 보도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게이츠는 20일 상원 방문 뒤 측근에게 최소 4명의 공화당 의원이 자신의 지명에 완강히 반대한다고 털어놨다. 전체 100명 중 민주당 47명에 이들이 가세하면 인준을 저지할 수 있는 상원 과반이 된다.

게이츠가 끝이 아닐지도

종용설도 불거졌다. 미국 CNN방송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 트럼프가 이날 오전 게이츠에게 전화해 “인준에 필요한 표가 부족하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의 길을 열어 줬다고 보도했다.

겉으로는 게이츠 지명 강행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트럼프는 대안을 검토한 듯하다. 플로리다주(州) 법무장관 출신 팸 본디(59)를 게이츠 사퇴 뒤 몇 시간 만에 새 후보로 지명했다. 이런 전광석화 지명은 첫 낙마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본디는 트럼프 집권 1기 첫 탄핵 심판 당시(2019~2020년) 트럼프 개인 변호사 중 한 명으로 활동한 충성파다.

그렇다고 해도 작지 않은 손실이다. 트럼프로선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와 퇴임 뒤 기밀 문서 유출 건으로 자신을 재판에 넘긴 법무부를 손보는 작업에 게이츠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에 더해 정적 제거, 정치적 복수에 활용하도록 법무부를 장악하는 데에도 현 법무부에 적개심을 가진 게이츠가 최적의 인물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낙마가 게이츠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일단 게이츠와 비슷한 곤경에 처한 국방장관 지명자 피트 헤그세스(44)가 아슬아슬한 처지다. 2017년 성폭행 뒤 거액을 주고 피해자 입을 막았다는 게 그를 둘러싼 의혹인데, 사건 당일 상황이 담긴 경찰 보고서도 20일 공개됐다.

트럼프 의회 장악력의 한계

이날 연방 상원의원인 JD 밴스(40) 부통령 당선자 사무실에 모여 헤그세스의 소명을 들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대체로 믿을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가 게이츠 사퇴로 성의를 보인 만큼, 다른 지명자들의 상원 인준은 당내 협조 속에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자기 뜻대로 주무르기에 공화당 상원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정부 관료 집단을 재편하려는 대통령 당선자의 야심에 대체로 동의하는 공화당 의원들이라도 당 지도자에게 맞설 의향이 없지 않다는 걸 게이츠 사례가 보여 줬다”고 짚었다. 신문은 친(親)러시아 시각을 드러낸 털시 개버드(43) 국가정보국(DNI) 국장 지명자의 국가 안보관이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의외의 패자는 트럼프 최측근 실세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게이츠는 정의의 망치가 될 것”(19일 엑스)이라는 이틀 전 공개 지지가 무색해졌다. 머스크는 투자은행 캔터피츠제럴드 CEO인 하워드 러트닉(63) 정권 인수팀 공동 위원장을 편들며 재무장관 인선에도 개입했지만 러트닉은 재무장관 대신 상무장관에 지명됐다.

“재무장관에 워시, 2026년까지”

1년 6개월 후 일이지만,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는 초대 재무장관으로 유력한 케빈 워시(54)를 지명하는 시나리오도 벌써부터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워시를 만난 트럼프는 그에게 재무장관을,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 창업자 스콧 베센트(62)에게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각각 맡기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WSJ가 21일 전했다. 다만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 임기가 끝나는 2026년 5월 워시를 연준 의장에 임명하고,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이동시키는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