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 재정' 외치며 짠물 예산 편성했지만... 추경 카드 실현되나

입력
2024.11.22 19:00
3면
대통령실, 긴축재정→확장재정 선회 시사
짠물 예산 편성·심의 중인 재정당국 난감
전문가 "재정 투입 필요"... 재정건전성은 부담

대통령실이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간 야당의 추경 필요성을 일축했던 기획재정부는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긴축 재정' 기조 선회 조짐을 보이며 재정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내년 추경 카드가 실현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2일 “추경 편성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다만 추경 편성 시기가 내년 초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추경 편성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추경 편성을 하게 된다면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두 번째가 된다.

하지만 재정당국은 추경 편성 가능성에 거리를 뒀다. 기재부는 즉시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현재 2025년 예산안이 국회 심사 중이며 내년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추경은 본예산을 고치는 일인데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는 시점에 추경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국가재정법상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절차상 내년 예산안이 확정된 뒤 가능하다. 게다가 예산 통과 직후인 연초는 예산을 신속 집행하면 되기 때문에 연초 추경 편성은 1998년 한 번(2월 추경)뿐이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되고, 좀처럼 온기가 돌지 않는 내수 경기를 고려하면 재정을 투입해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역대급 세수 펑크가 2년 연속 지속되고 있어 쓸 수 있는 재정 카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윤 정부는 취임 후 매년 23조~24조 원 규모의 지출을 줄이는 역대급 짠물 예산을 편성 중이라,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지출도 마땅치 않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년 경제에 대한 어려움을 예상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같다"며 "올해도 세입 결손이 많은 상황이라 원래 계획했던 지출을 다 못 할 가능성이 높은데 시급성을 따져 예산을 보강하고 추경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수 경기가 계속 침체돼 있는데 정부는 계속 긴축적인 재정 정책에 금리 인하도 하지 않고 대출도 막는 등 3가지 정책 수단을 모두 조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추경을 내년에서야 하는 건 시기적으로 좀 늦다"고 말했다.

곳간지기 기재부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한다. 이미 정부가 세수 펑크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국고채 발행 규모를 역대 최대인 201조3,000억 원으로 편성한 상황이라 추가 국채 발행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국고채 금리 상승→회사채 금리 상승→기업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내년 말 1,27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채무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세수 펑크를 기금 여유 재원으로 메우면서도 국채 추가 발행만큼은 손대지 않았다"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영향으로 시장에서 추가 10조~20조 원 정도는 소화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추경은 여러모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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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조소진 기자
세종= 이성원 기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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