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14년 전 이혼하면서 남편 B씨로부터 매월 50만 원의 양육비를 받기로 하고 자녀(당시 3세)를 맡았다. 하지만 B씨는 이혼 후 양육비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진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를 키우다 6년 전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행원은 법원을 통해 B씨의 보험채권 압류 및 부동산 강제경매를 진행하다가 B씨의 양육비 지급 약속에 부동산 경매를 취하했다. B씨는 약속과 달리 부동산을 매각하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이행원이 재차 이행명령과 감치명령 소송을 제기하자 B씨는 결국 올해 3월 미지급금 3,400만 원을 A씨에게 줬다.
내년 7월부터는 A씨처럼 장기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가족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원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경제적 위기에 빠진 한부모가족의 자녀 양육을 도우려는 취지다. 내년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 예산도 올해보다 2배 이상 증액된다.
21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구는 34만9,716가구(2023년 기준)다. 이 가운데 55.2%인 19만2,906가구가 정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중위소득 60%(올해부터 63%) 이하 가구다. 결별 과정에서 양육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도 대다수다. 202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혼·비혼 한부모가구 중 78.7%는 법적 양육비 채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가구도 72.1%였다. 양육비 채권(정기지급 기준)이 있는 가구라도 25.9%는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3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듬해 전담기구로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산하에 이행원이 설립됐다. 이후 이행원을 통해 양육비 채권 추심 등이 진행되면서 양육비 지급 이행이 크게 늘었다. 이행원 설립 첫해인 2015년엔 양육비 누적 이행건수(이행률)가 514건(21.2%)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9월 기준 1만2,266건(44.7%)으로 22배 이상 늘어났다. 2021년부터 불이행자에게 운전면허 정지 100일, 출국금지 6개월, 명단공개 3년 등 행정제재 조치를 강화한 것도 효과를 냈다.
하지만 양육비 채권추심 소송은 통상 2년가량 걸리는 데다 승소하고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가구가 여전히 절반 이상이다. 이에 정부가 올해 3월 ‘한부모가족 양육비 선지급제 추진 방안’을 마련하고 9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양육비 선지급제가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개정안은 기준중위소득 150% 이하 양육비 미지급 한부모가구에 정부가 만 18세 이하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을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징수하는 방안이 골자다. 정부는 제도 도입에 따른 한부모가구 지원 대상을 1만9,000명으로 추정했다. 선지급 양육비 액수는 한부모가구 평균 소득(월 245만 원) 기준 양육비 지출액(41만 원)에서 기존 정부 지원금(21만 원)을 제하는 방식으로 산정했다. 제도 신설에 따라 양육비 지원 예산도 올해 110억600만 원에서 287억3,000만 원으로 대폭 늘렸다.
비양육부모의 신속한 양육비 이행 방안도 개정안에 마련됐다. 우선 정부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금융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도 조회할 수 있도록 재산조사 권한이 강화된다.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 행정제재는 감치명령 없이도 처분할 수 있도록 바뀐다. 양육비 불이행 명단 공개 시 불이행자에게 부여하는 소명 기간도 3개월 이상에서 10일 이상으로 단축된다. 아울러 이행원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분리돼 독립법인이 된다. 양육비 이행 지원의 법적 안정성을 강화하고 선지급제를 원스톱 처리하기 위한 조치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양육비 선지급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부모가족을 실질적으로 돕고 자녀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제도”라며 “이행원의 전문성을 강화해 양육비 접수부터 회수까지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