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정부와 1년 가까이 대치하고 있는 사직 전공의 앞에는 군 복무라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수련을 중단한 전공의는 군의관·공보의로 복무해야 하는데, 그 인원이 3,500명에 달해 1년에 한 번 있는 입대 기회를 잡으려면 최장 4년을 대기해야 할 판이다. 입영 대신 수련 재개를 택한다고 해도, 병역법상 전공의는 한번 수련을 중단하면 즉시 징집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정부가 복귀한 전공의에 한해서라도 입영을 연기해주는 특례를 마련해야 하는데, 전공의 단체가 내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비타협 노선을 고수하고 있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병무청은 지난 18일부터 29일까지 사직 전공의 중 의무사관후보생 신분인 3,480명에게 입대 희망 시기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입대 시기를 △2025년 △2026년 △2027년 이후 중에서 고르라는 내용이다.
의무사관후보생은 통상 1, 2월에 입대 지원을 하고 3월 중순 입영한다. 매년 입영 인원이 1,000명 정도라 사직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입대하기는 어렵다. 수련병원 취업 당시 향후 군의관·공보의로 복무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한 터라 일반병으로 입대할 수도 없다. 병무청도 이 점을 고려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특정 연도에 지원이 몰린다면 군대에 가려고 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입대 난민이 생기게 된다. 병무청 역시 "최장 4년까지 대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직 전공의들이 내년 3월 수련병원 복귀를 택한다고 해도 징집 연기는 어렵다. 병역법 시행령상 의무사관후보생은 수련을 중단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입대해야 한다. 병무청의 의무사관후보생 지원 안내사항에도 "수련과정 중단 시 재채용 등의 사유로 수련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명시돼 있다. 내년 3월 복귀가 가능할지도 정부의 선심에 달렸다. 현행 규정상 수련을 중도에 그만둔 전공의는 1년 이내 동일 과목, 동일 연차로 복귀할 수 없는데, 전공의들의 사직 시점은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를 낸 올해 2월이 아니라 정부의 사직서수리금지 명령이 철회된 올해 6월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원래 전공과 연차로 복귀해 수련을 재개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레지던트 2년 차 이상이라면 수련병원에서 상하반기 전공의 정기 모집 때 정원 외로 선발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기존 전공의가 수련을 중단하는 등 빈자리가 생겨야 가능한 일이다. 병역을 다해도 자기 전공·연차에 빈자리가 없다면 입대 난민에 이어 수련 난민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최악의 경우 레지던트 1년 차로 지원해 다시 처음부터 수련을 받아야 한다.
결국 사직 전공의의 군 문제를 풀려면 복지부와 병무청 등 관계당국이 협의해 특례를 마련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다. 하지만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내년 의대 모집정지 주장을 고수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터라 의정갈등 타개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사직 전공의는 "최근 진행된 병무청 설문조사도 답변하지 않고 군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게 전공의들 분위기"라며 "군대에 다녀와도 자신이 복귀할 수 있도록 향후 1, 2년간 신규 전공의를 뽑으면 안 된다는 비합리적 주장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