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자식인 내가 엄마의 보호자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제 몸처럼 쓰는 스마트폰을 어려워하고, 키오스크 앞에서 긴장하는 걸 볼 때면 엄마를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내놓는 일 자체가 걱정됐다. 이는 “엄마 대신 내가 해줘야 해”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엄마를 위해 대중교통 배차 시간과 식당을 미리 알아놔야 한다는 부담에 간단한 외출에도 기진맥진해졌다. 딱히 엄마가 먼저 부탁한 적 없었는데도.
격월간 문예지 릿터(10, 11월호)에 실린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소설 ‘레몬케이크’에서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려 집을 나선 엄마 ‘선주’와 동행한 딸 ‘기진’도 마찬가지다. 젊어서는 주로 식당 일을, 나이 들고는 공공근로나 공사장 일을 하면서 읽고 쓰는 일이 영 익숙지 않은 선주다. 기진은 오래전부터 부모의 통역 역할, 그것도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증세로 요양원에 가자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간다.
엄마 곁에서 기진은 늘 노심초사다. 길을 헤매지는 않을까. 종업원에게 말을 놓지는 않을까. 기진이 모은 돈을 털어서 차린 여행전문책방에서 시인이자 사진작가 ‘서인주’와 함께하는 낭독회가 예정된 탓에 마음은 더욱 급하다.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 주문한 레몬케이크와 ‘정말 좋은 날’ 먹으려고 아껴둔 샴페인”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시원치 않은 책방 운영 상태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이제는 술 없이 잠들 수 없게 된 기진은 “시원한 알코올로 몸을 적시면 기분도 훨씬 나아지고 엄마에게 너그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르고 빵까지 안겨 드리고 버스에 태워 보낸 기진은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비로소 큰 숙제를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부모,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말처럼 “엄마가 살아 있는 한 딸은 엄마의 주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인 걸까.
엄마의 우울감과 인지기능을 살피는 검사지를 살피던 기진은 엄마가 별개의 욕구를 가진 타인임을 깨닫는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면서도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에는 ‘예’라는, 언뜻 모순으로 읽히는 엄마의 답변을 통해서. “엄마는 엄마대로 오늘 서울로 여행을 오신 건지도 모른다”고 깨달은 그는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고 곱씹는다. 이런 분명한 경계선이 어쩌면 관계를 지속하도록 하는 동력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