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까지 투입... 야탑역 '살인 예고' 20대 구속영장 기각

입력
2024.11.15 22:18
지난 9월 익명 게시판에 "30명 찌른다" 예고
두 달 동안 경찰 529명에 장갑차까지 투입돼
알고 보니 사이트 관리자... 홍보 위해 자작극
'음란물 방치 혐의' 사이트 관계자 3명 수사 중

자신이 관리하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야탑역 흉기 난동' 살인 예고글을 올렸던 2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15일 기각됐다. 해당 남성이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 홍보를 위해 올린 글로 빚어진 소동에 경찰관 수백 명 등 공권력이 대거 투입됐다.

수원지법 송백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협박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20대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송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범행을 반성하고 증거가 수집된 점, 범행 경위와 정도, 가족 관계, 초범인 점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 내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 9월 18일 본인이 관리하는 B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야탑역 월요일 날 30명은 찌르고 죽는다"라는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그는 "최근 부모님도 날 버리고 친구들도 날 무시해 XX하려다 (C 커뮤니티에) 올리면 잡힐까봐 여기다가 올린다"라며 "9월 23일 월요일 오후 6시"라고 구체적인 범행 시간도 적었다. 국내 포털 사이트 지도맵에서 캡처한 야탑역 인근 지역 이미지도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게시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급속도로 유포됐고,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게시글이 올라온 18일 오후부터 야탑역 일대에 특공대를 포함한 경력과 장갑차 등 장비를 투입해 우발 상황에 대비해 왔다. 살인 예고글이 올라온 날부터 지난달까지 야탑역 주변에 투입된 경찰관은 모두 529명으로 집계됐다.

사건 초기엔 사이트 운영자의 협조 거부로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었으나, 미국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A씨를 붙잡았다. 운영자 계정으로 미국 서버에 로그인한 IP 접속 위치를 전달받은 경찰은 지난달 29일 서울 사무실 소재를 파악해 해당 사이트 운영자 등 3명을 검거하고 사무실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이후 자료 조사 중 A씨의 신원을 특정해내는 데 성공했고, 사건 발생 56일 만인 이달 13일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서울 모처에 사무실을 차리고, 미국에 서버를 둔 B사이트를 운영해왔다. 직원은 A씨를 포함, 7명 남짓으로 알려졌다. 이 사이트에는 '익명으로 진행되는 안전 커뮤니티', 'IP 및 신상 걱정 없이 이용하는 사이트' 등의 소개글이 있었다. 현재는 접속이 끊겼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이트를 홍보해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 야탑역 살인 예고, 사이트 홍보 열 올린 직원의 '자작극'이었다)

경찰은 A씨와 운영자 C씨가 사전에 범행을 공모하거나 지시가 오갔는지 여부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C씨를 상대로 해당 사이트 홍보를 위해 게시판에 올라온 음란 사이트 링크 등을 방치한 혐의도 수사 중이다. 운영자 C씨와 다른 관리자 2명 등 20대 남성 3명도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야탑역 순찰 강화로 인해 발생한 인건비, 근무수당, 식사비, 유류비 등 비용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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