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구온난화가 기후변화 마지노선으로 합의된 '1.5도'를 일시적으로 넘겨 전 지구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유엔 기후변화 회의체에서 '기후재정'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국이 배출한 탄소 때문에 태평양 섬나라 같은 개도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완화·적응·손실 보상을 위해 '돈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내느냐'가 관건이다.
15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진행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에서 도서국가연합(AOSIS)과 최빈개도국(LDC) 대표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각국들이 국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국가들을 보호하는 게 기후대응 프레임워크의 핵심이라는 점을 잊을까 우려스럽다"며 선진국들의 전향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경제·기술 발전 수준이 낮은 이들 섬나라와 최빈국은 탄소 배출이 극히 적은데도 해수면 상승과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직격탄은 가장 빠르고, 가장 크게 맞고 있다.
UNFCCC COP는 매년 세계 각국 대표가 모여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체로, 올해 핵심 의제는 '기후재정'이다. 탈탄소 기술 확보 등을 통한 기후변화 '완화'나 기상이변 속 '적응'을 해내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이때 경제력이 더 크고, 탄소 배출 책임 역시 훨씬 큰 선진국들이 취약한 개도국들에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논의의 골자다.
당초 선진국들은 2009년 COP15에서 '연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목표로 2020년까지 조달 방안을 찾기로 합의했다. 늦었지만 2022년 기준 1,159억 달러가 모였으나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재정의 질'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옥스팜의 '2023 기후금융(재정)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보고된 공공 기후재정 중 4분의 1만 '증여'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차관', 즉 선진국이 개도국에 빌려주는 '대출'이었다.
'화석연료 비확산조약 이니셔티브'의 전문가인 하지트 싱은 COP29 현지 기자회견에서 "재정의 질은 간과하면서 재정 총량에만 주목하는 것은 엄청난 불의"라며 "차관은 (개도국)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며, 진정으로 돕기보다 위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 속에 새로 등장한 개념이 'NCQG(신규 기후재정 목표)'다. 이미 약속된 1,000억 달러를 시작점으로 재원 규모는 얼마나 키울지, 재정 공여국을 기존 선진국에서 중국 등으로도 확대할지, 양허성(무상 증여성) 공공 자금에 방점을 둘지 아니면 다자개발은행(MDB) 등 민간 자금을 대폭 증대할지 등 사실상 모든 게 NCQG 관련 협상 의제다.
NCQG는 올해 안에 정하는 게 목표지만 미국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어수선한 국제 기후 거버넌스 속에서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돈을 내야 하는 선진국과 한시가 급한 개도국 간 입장 차가 클 수밖에 없는데, 리더십을 이끌 국가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은 공여국 범위를 중국이나 중동 산유국 등으로 넓히고, 글로벌 기업 같은 민간의 참여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개도국과 기후단체들은 선진국의 공공 재원부터 늘리고, 규모도 '연 1조~5조 달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COP28에서 개도국에 대한 피해 보상 성격으로 새롭게 조성된 '손실과 피해 기금'이 NCQG에 포함될지 여부도 쟁점이다.
UNFCCC 요청으로 관련 문제를 연구해 온 '기후재정에 대한 독립 고위 전문가 그룹'(IHLEG)은 전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후행동을 위해 선진국, 중국, 중국 외 개도국을 포괄해 2030년까지 연평균 6조5,0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중 중국 외 개도국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 규모는 2조3,000억~2조5,000억 달러로 추산했다.
한국은 1992년 UNFCCC 채택 당시 개도국으로 분류돼 공여 의무를 지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 규모나 온실가스 배출량 측면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들어 국제적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녹색기후기금(GCF) 6억 달러, 손실과 피해 기금 700만 달러 공여를 약속한 바 있다. 시민사회 연대체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난달 29일 한국을 비롯한 G20을 향해 "기후재정 확대와 남반구 지원, 화석연료 퇴출 등 책임 있는 기후행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