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때 우선순위로 하시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그렇지, 맞아. 두 번째 임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막무가내로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해 협상이 난항에 빠졌던 2019년. ‘주한미군 완전 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를 앞에 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렇게 총대를 멨다. 당시 트럼프 1기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찬성한 참모는 없었다.
2년 전 회고록 '신성한 맹세'를 통해 이 같은 일화를 공개한 트럼프 1기 마지막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주한미군 철수를 트럼프의 대표적 기이한 제안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런 트럼프를 만류하다 지친 자신을 돕겠다며 나선 폼페이오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그들은 트럼프의 재선을 예상했을까.
트럼프가 11·5 미국 대선 승리로 4년 만에 귀환하면서 그가 과거 2기 행정부 우선순위로 꼽았던 주한미군 철수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특히 12일(현지시간) 2기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지지해 온 소령 출신 폭스뉴스 진행자, 피트 헤그세스를 지명하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사실 주한미군 철수론은 트럼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에 앞서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하자마자 당시 3만2,000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3단계로 철군하는 계획까지 발표했었다.
철수의 구체적 시간표까지 짰던 카터와 공화당 우위의 의회 권력까지 거머쥐고 더 강해져서 돌아온 스트롱맨 트럼프. 누구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더 위협적일까.
전문가들은 지금보다 40여 년 전 상황이 더 심각했다고 입을 모은다. 베트남전 패배로 미군이 아시아에서 발을 빼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고립주의’가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로까지 이어졌기에 그 뿌리가 더 깊고 단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바탕으로 1971년 닉슨 행정부는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시켰고, 이에 6만6,000여 명 수준이던 주한미군은 4만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시 미국이 가지고 있는 베트남전에 대한 트라우마는 1980~1990년대까지 관통할 정도로 엄청났다”며 “민주당, 공화당 구분 없이 모두 아시아에 배치된 미군을 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지금 상황과 비교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일종의 거래 논리다. 주한미군 주둔을 지원하는 비용인 방위비분담금을 올려 받기 위해 철수 카드를 꺼낸 것. 한국이 경제력에 맞게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아예 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한국 입장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막으려면 돈을 더 내면 된다. 문제는 트럼프가 제시할 액수가 천문학적이라는 데 있다.
현재 국내에 2만8,5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가 실패했다는 것이 된다. 실제 막판까지 철수 계획을 고수했던 카터는 집권 3년 차인 1979년에야 그 뜻을 접었다. 누가 그의 고집을 꺾었을까.
당시 주한미군 철수에 공감했던 정치권과 달리 미군 수뇌부는 반대했다. 해방 직후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7만7,000여 명)이 1949년 철수하자 그 틈을 노리던 북한이 남침하면서 6·25 전쟁으로 이어진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당시 유엔사 참모장이었던 존 싱글러브 소장. 그는 1977년 카터의 3단계 철군 계획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 지상군을 계획대로 철군하면 1950년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회 청문회에도 출석해 “북한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싱글러브의 확신은 이른바 ‘암스트롱 보고서’에 근거했다. 미 육군 산하 싱크탱크 소속 대북정보담당관이었던 존 암스트롱이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한군이 보유한 탱크가 애초 미군이 파악한 것보다 80% 이상 많고 비무장지대 100㎞ 이내에 별도의 탱크사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카터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카터는 철군 계획을 접는 대신 싱글러브 소장의 행동을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좌천시켰다. 이에 암스트롱은 더 집요하게 정보 수집에 매달렸고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미 국방부는 1978년 암스트롱을 중심으로 대북 정보전문가 35명으로 구성된 특별팀을 꾸렸다.
그해 10월에 나온 업그레이드 버전의 ‘암스트롱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북한 지상군 규모가 기존 45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 55만~65만 명에 달하고 사단도 애초 알려진 28개가 아닌 41개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파장은 컸다. 주한미군 철수를 뒷받침해 온 근거가 뒤집히면서 여론은 철수 반대로 기울었다. 여당인 민주당조차 입장을 바꾸면서 카터는 1979년 2월 상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철수 계획을 접어야 했다.
폼페이오 말고도 1기 행정부에서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제동을 건 참모들이 있었다.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는 2018년 초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에 35억 달러(약 4조9,200억 원)나 쓸 이유가 있느냐”며 철수를 주장하자 “3차 대전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둔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으로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역할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기 행정부는 헤그세스를 비롯,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예스맨들만 기용하면서 1기 때처럼 전문성과 경륜을 겸비한 전문가들의 견제구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에 절대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카터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가 한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만큼, 주한미군 철수를 놓고 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가 협상 의제로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박 교수는 “여전히 미국 주류 전략가들은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전략 측면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트럼프는 카터와 달리 고립주의를 추구하지 않아 주한미군 철수가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철수 카드를 활용해 한국에 더 많은 비용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