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서현이는 2013년 10월 계모 박모(51)씨에게 갈비뼈가 16개 부러지는 폭행을 당한 끝에 숨졌다. 사망 원인은 흉부손상 및 폐 파열. 박씨는 아이가 단골 미용실 원장이 이사 선물로 준 2만 원 중 2,300원을 헐어 친구들과 과자를 사서 나눠먹었다는 말에 격분해 닥치는 대로 서현이를 때렸다. 이날은 서현이가 기다리던 학교 소풍날이었다.
서현이는 죽기 한참 전부터 학대 피해 아동의 징후를 드러냈지만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자주 드는 멍들, 마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귀가를 늦추던 날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허벅지 뼈가 두 동강이 났고 같은 해에 양손, 발등, 정강이에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2도 화상을 입었지만 어른들은 구조 신호를 모두 놓쳤다.
공혜정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책 '잊혀지지 않을 권리'에서 주변에서 아무도 학대를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동학대는 가난하고, 못 배운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 평수 넓은 신축 아파트에 살며 학부모 회장까지 맡고 있는 싹싹한 성격의 엄마, 모든 교과마다 백 점을 맞는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아이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편견" 때문이었다고 꼬집는다.
시민단체 활동을 해본 적 없던 공 대표는 박씨를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탄원서를 쓰게 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학대 피해 아동의 권익 보호에 힘쓰고 있다. 박씨가 자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변호사가 징역 5년형이 예상된다고 했다' '수감생활 동안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적었다는 사실을 듣고 아동학대 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했던 게 발단이 됐다.
책은 공 대표가 지난 12년간 법정을 오가며 마주한 아동학대 사건의 실상을 엮은 기록이다. 개 목줄로 침대에 묶인 채 방치되다 사망한 대구의 3세 아이, 상습 폭행에 시달리다 캐리어에 갇혀 죽은 충남 천안의 9세 아이···. 한국 사회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이다. 학대를 피해 지붕으로 탈출했던 경남 창녕의 피해 아동이 예전의 위탁가정에 다시 위탁돼 잘 자라고 있다는 다행스러운 이야기도 책에 담겼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끔찍하고 참혹한 이야기가 덮친다. 읽는 사람도 그러한데, 쓰는 사람은 어땠을까. 공 대표는 글을 쓰면서 "'포기해버릴까' 이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했다.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도망치고 싶었고 주저앉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꿋꿋이 버틴 건 "먼저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죽음이 법과 시스템을 개선하는 슬픈 계기가 되었기에 이 아이들은 '잊혀지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