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된 ‘존스법’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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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화오션이 12일 미국 해군의 3만1,000톤급 급유함 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 8월에 이어 두 번째 미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계약이자,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미 간 조선업 협력을 요청한 후 첫 성과다. 양국 정상 통화 당일 헨리 해거드 전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기고를 통해 “한국 조선업의 대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존스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내의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미국 내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운항해야지만 해상운송을 허가하는 법이다. 당초 전시에 동원할 수 있는 상선을 확보하려는 안보 목적으로 제정됐다. 하지만 미국 조선업 과보호를 초래해 조선업 쇠퇴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의 세계 조선 점유율은 지난해 0.1%까지 줄어들었다. 중국은 50%, 한국은 28%에 달한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 국면에서 미국 해군력 약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래전부터 존스법 개정·폐지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어떤 미국 정치인도 앞장서지 못했다. 메릴랜드나 루이지애나 등 조선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과 관련 이익 단체들의 반발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당시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며 세계 각국으로부터 폐지 압력이 쏟아질 때도 미국이 예외 인정을 관철했을 정도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2에서 원로 의원 스택하우스가 필리버스터를 할 때 거론하는 악법 중에도 존스법이 등장한다.

□차기 트럼프 정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은 미 해군력 강화에 한국 등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존스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강력한 보호무역 옹호자인 트럼프의 차기 정부가 미국 보호무역주의 상징인 존스법 개정에 나서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한국 조선업계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한국 조선소가 미 해군의 전초기지가 될 경우 자칫 고래 싸움 사이에 끼어든 새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