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증정 이벤트'를 미끼로 공동구매를 유도해 88억 원을 가로챈 범죄조직이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개별 피해자 단 한 명을 속이기 위해, 여러 명으로 이뤄진 단체채팅방을 만들고 다른 참가자들이 마치 공동구매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해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런 수법으로 하루에 수억 원을 뜯기도 했다.
13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공동구매 참여 시 현금을 지급하겠다"며 피해자 301명을 유인해 약 88억 원을 가로챈 범죄집단의 국내 총책 등 54명을 사기 등 혐의로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관리자급 14명은 구속 송치됐다.
범행은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우선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에 무작위로 전화를 건 뒤 ①'신규 쇼핑몰에 리뷰를 작성하면 사은품을 증정하겠다'며 메신저 친구 추가와 가짜 쇼핑몰 사이트에 가입을 유도했다. 피해자가 리뷰를 작성하면 실제 상품권을 증정해 신뢰를 쌓았다.
그다음은 ②'리뷰를 너무 잘 쓰셔서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싶다'는 메시지로 호감을 샀다. 이들은 쇼핑몰 웹사이트에 올라온 제품을 '공동구매 팀 미션'에 참여해 구입하면 그 비용의 35%를 추가해 현금으로 환급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면서 "유명인들이 (공동구매를) 주도하고 있어 신상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이 더 철저한 곳에서 진행한다"며 사용자 특정이 어려운 텔레그램으로 이동하게 했다.
텔레그램으로 옮겨간 뒤엔 ③'사기 역할극'이 시작됐다. 채팅방에선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매니저와 다른 아르바이트생으로 위장한 조직원 3명이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는 '마감 전 중도 하차 불가' '한 명이라도 구매하지 못할 시 팀 전체가 수익을 얻을 수 없다' 등 규칙을 빠르게 공지한 뒤 바로 공동구매 시작을 알렸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 그러하듯 (피해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몰아붙여 일단 휩쓸려 가게 하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연달아 구매해 금액 부담으로 중도 이탈을 하고 싶다고 하면, 바람잡이 조직원들이 "팀원 한 명이라도 나가면 수익은 없다"고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대출을 알선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④환급을 요청할 시엔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일당은 피해자를 ⑤사이트에서 강제 탈퇴시켜 꼬리를 잘랐다. 이 모든 과정은 첫 통화 후 고작 하루 만에 이뤄졌으며, 가장 큰 개별 피해금액은 4억1,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또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짜 사이트 69곳을 수시로 바꿔가며 개설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번에 송치된 인원 외에 사기를 주도한 해외 총책 3명 중 한국인 2명은 중국 공안에 검거돼 송환 중이며, 나머지 중국 국적 총책은 적색수배 중인 상태다. 또 국내 총책 중 한 명은 사립중학교 소속의 20대 남성 직원으로, 검거 당시까지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범죄수익금 11억 원 상당을 압수 또는 기소전 몰수보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보이스피싱은 경찰, 금감원 등 기관 사칭이 대부분이었는데, 리뷰 작성 유도 등 수법이 다양하게 진화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