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임현택 회장 퇴진 이후 리더십 공백을 메울 비상대책위원장 선거에 돌입했지만, 전공의 단체 대표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선거인단을 압박해 원하는 후보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게 한 뒤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12일 의협 대의원회에 따르면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 교수)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회장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등 4명이 비대위원장 후보 등록을 마쳤다. 투표는 선거권이 있는 재적 대의원 248명을 대상으로 13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다득표자 2명을 놓고 오후 8시 20분부터 1시간 동안 결선투표를 한다.
임 회장이 전공의와 불통 등을 이유로 탄핵된 만큼 후보들은 저마다 전공의와 소통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도 “비대위는 전공의들을 포용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며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도 전공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이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을 하면서 선거판이 동요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해당 메시지에서 “박 교수는 신뢰를 바탕으로 젊은 의사들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각 병원 전공의 대표 72명이 해당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대의원이 아니라서 투표권이 없다.
박 위원장도 의협 회원인 만큼 조직 내 선거에 자유롭게 견해를 밝힐 수는 있지만, 그의 발언이 현실적으로 대의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뽑으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대전협이 원하지 않는 후보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면 의협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해서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의협 관계자들에게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대전협의 참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협 비대위원장은 차기 회장 선출 전까지 의대 증원 문제 대응에 전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박 위원장이 원하는 비대위원장이 세워지면 전공의 영향력은 그만큼 강해지게 된다. 의료계 안팎에선 “박 위원장이 ‘수렴청정’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비대위뿐 아니라 향후 회장 보궐선거도 전공의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로 박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은 구분돼야 하고 비대위원장은 회장 선거 전까지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는 글을 올린 후, 비대위원장 후보들은 저마다 회장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 의협 대의원은 “박 위원장이 사실상 비대위원장을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의료계가 의협 회장 탄핵이라는 혼란을 수습하고 하나 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박 위원장은 자기 정치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전공의 뜻에 반하면 언제든 수장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시그널로 다가온다”며 “그간 무대응으로 일관하더니 이제는 막후 실세 노릇을 하려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