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호주 국가안보위원회는 110억 호주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신형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호주해군이 운용 중인 앤잭급 호위함 8척을 신형 호위함 11척으로 교체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업 방식은 해외 사업자를 선정해 3척은 직도입하고 8척을 호주 현지에서 도입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조선소는 4개국, 5개 업체였다. 우리나라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각각 대구급과 충남급의 개량형을 제안했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모가미급 호위함 개량형을, 독일 TKMS는 메코(MEKO) A200 개량형, 스페인 나반티아는 ALFA 3000으로 명명된 수출전용 호위함을 제안했다. 호위함의 성능과 가격, 기술이전 조건, 납기 일정 등을 감안했을 때 한국 업체들이 이 사업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호주는 군함 수출 경험이 전혀 없는 일본과 사업비 초과 가능성이 있는 독일 제안 모델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심지어 이번 발표는 장호진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호주에 가서 호주 정부 고위 인사들과 접촉해 한국 호위함 선정을 요청한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각 조선소가 제안한 군함의 성능과 가격 조건만 놓고 보면 사실 이 사업은 한국 업체들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애초에 호주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가성비를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당초 호주는 영국의 26형 호위함을 기반으로 설계한 헌터급이라는 8,800톤급 대형 호위함 9척을 도입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그리 강력하지 않은 이 호위함에 1척당 무려 3조7,000억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는 것이었다. 이 돈이면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 2척을 도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호주는 헌터급 도입 수량을 6척으로 줄이고, 삭감된 3척 구매 비용으로 ‘티어(Tier) 2’ 전투함 11척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건함 계획을 수정했다.
총사업비 110억 호주달러로 11척의 전투함을 도입하려면 1척당 10억 호주달러(약 9,200억 원)를 넘어가서는 안 된다. HD현대중공업이 제안한 충남급은 약 4,000억 원, 한화오션이 제안한 대구급은 약 3,500억 원 수준이고, 일본 모가미급 개량형은 8,000억 원, 독일 메코 A200은 7,300억 원, 스페인 알파 3000은 8,000억 원 정도였다. 후보군 모두 호주가 설정한 예산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업에는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11척 가운데 8척을 호주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성 노조가 장악한 호주 조선소는 건함 품질은 최악이면서 납기는 늦고,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악명이 자자하다. 원래 1척에 6,000억 원이었던 스페인 F100 이지스 호위함은 호주에서 3척을 건조하면서 그 가격이 1척에 2조5,000억 원으로 뛰었다.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1세급 강습상륙함을 호주에서 건조한 캔버라급은 5,000억 원이었던 원형보다 약 3배가 뛴 1조4,270억 원에 건조됐고, 현용 앤잭급 호위함 역시 구형 메코 200급 호위함보다 1.5배 비싼 가격으로 건조됐다. 어떤 배든 호주 현지 건조가 이루어지면 최소 1.5배에서 4배까지 가격이 뛰는 ‘마법’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각 후보 모델들의 직수출 가격은 모두 호주의 예산 범위 안에 들어오지만, 11척 중 8척을 호주에서 건조할 경우, 앞선 다른 건함 사업들의 사례를 적용했을 때 한국이 제안한 호위함들을 뺀 나머지 후보는 모두 호주가 준비한 예산 수준을 크게 초과하게 된다. 호주 현지 건조 가격이 직수출 대비 최소 2배 정도 가격 상승 압력에 노출돼 있다고 가정했을 때, 독일 메코 A200은 직도입분 약 2조2,000억 원, 호주 건조분 약 11조7,000억 원 등 13조9,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호주가 정해놓은 예산 규모를 무려 40%나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는 일본 모가미급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당초 제안된 모가미급은 기준배수량 3,900톤급에 1척당 4,400억 원 정도였는데, 일본은 지난 7월 호주 방산전시회에서 모가미급을 확대 개량한 ‘업그레이드 모가미’ 모델을 제안했다. 이 개량형은 기준배수량 4,880톤으로 거의 1,000톤 가까이 커졌고, 선체와 센서가 대폭 개량돼 큰 폭의 가격 상승이 발생한 모델이다. 이 업그레이드 모가미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올해 발주한 신형(新型) FFM을 기반으로 하는데, 일본 방위성 자료에 따르면 이 배 1척은 약 875억 엔(약 8,026억 원)이다. 이를 호주에 수출할 경우 직수출분 3척에 2조4,078억 원, 호주 현지 건조분 12조8,416억 원으로 총사업비는 15조 원을 넘게 된다. 더욱이 일본은 해외에 군함을 수출하고 해외 기술이전 판매 사업을 했던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업 진행 과정이 더욱 꼬이고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약점도 있다. 호주가 일본과 독일 중에서 사업자를 결정할 경우, 40~50% 이상 비용이 초과되고, 사업 일정이 지연돼 사업 정상 추진이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번 사업에서 호주가 요구한 예산 범위 내에 들어오는 후보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탈락했다는 것은 이 가격 경쟁력을 상쇄할 만한 감점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 안팎에서 보도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한국 업체들의 탈락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설계와 신뢰 문제다.
애초에 호주는 현재 사용 중인 미국제 장비 탑재와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요구했다. Mk.41 수직발사기와 ESSM 함대공 미사일, NSM 함대함 미사일 탑재, 100명 이하의 승조원이 호주의 핵심 요구 조건이었지만, 한국은 한국산 KVLS와 해궁 함대공 미사일, 해성 함대함 미사일 탑재를 제안했고, 승조원 숫자 역시 호주 요구치 대비 25~40% 가까이 많았다. 두 업체는 핵심 무장 체계를 미국산으로 교체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호주의 미국산 무장·장비 요구를 너무도 간과했다.
신뢰 문제도 이번 탈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지 업계에서는 왜 한국만 2개 업체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냐는 의문 제기가 많았다. 현재 한화와 현대 두 업체는 KDDX 사업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주관부서인 방위사업청의 방관 속에서 서로 기술력과 도덕성을 헐뜯으며 대외 이미지를 깎아먹고 있다. 일본·독일은 정부가 구심점이 되어 ‘원팀’으로 경쟁에 참가했는데, 두 업체 분쟁의 단초를 제공한 우리 정부는 사태 해결에 나서서 원팀 구성을 주도하기는커녕, 분쟁 격화를 팔짱 끼고 지켜만 보면서 호주에 가서 이런 업체들을 선정해 달라고 영업활동을 벌였다. 대통령실은 정말 이런 세일즈가 호주에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문제는 두 업체의 상호 비방전이 격화하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 안보는 물론,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방위산업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주변국은 과거 1·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처럼 대규모 해군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해군 예산 증액은커녕 신형함을 발주하면서 구형함보다 수백억 원씩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라고 업체들을 다그치고 있다. KDDX 사업은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고 있고, 차기 호위함 사업도 유찰이 거듭되며 해군 군비 증강은 고사하고 전력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두 업체는 4조 원대 폴란드 잠수함 사업, 70조 원대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도 따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상대 업체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비방하며 K방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제 얼굴에 침 뱉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자중지란은 폴란드·캐나다는 물론 최근 트럼프 당선자가 가능성을 열어놓은 미국 군함 시장 진출에도 큰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우리 안보를 다잡고, 미래 먹거리 산업인 K방산의 해외시장 안착을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쇄신은 방산 정책 분야 인사들의 물갈이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