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금융상품인 새마을금고 기업 운전자금 대출의 허점을 악용해, 대출금을 사업에 쓸 것처럼 꾸며 190억 원가량을 뜯어낸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집을 사려고 새마을금고에서 11억 원을 빌렸다는 의혹이 불거져 문제가 됐던 대출 상품과 같은 것이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지훈)는 새마을금고에서 15건의 대출을 시도해 193억 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대출브로커 A씨 등 16명을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들은 2020년 9월부터 2022년 7월까지 허위 서류를 기반으로 새마을금고로부터 대출금을 받아낸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명의 대여자 △서류 작성책 △대출 브로커 △감정평가사 등이 짝을 맞춘 브로커 일당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주는 새마을금고의 기업 운전자금 대출 상품을 통해 범행했다. ①실차주의 의뢰를 받은 대출 브로커는 대출 신청인 역할을 할 명의 대여자를 모집하고 ②명의 대여자는 대출금의 약 5%를 대가로 받기로 한 후 범행에 가담, 토목공사 등에 자금을 사용할 것처럼 대출을 신청했다. 이어 ③감정 브로커는 담보로 제공할 토지의 감정가를 부풀려줄 특정 감정평가법인을 안내하는 한편 ④새마을금고 대출 담당 직원은 전산 조작을 통해 해당 법인에 평가를 의뢰했다.
이들의 범행은 새마을금고의 전산 허점 탓에 가능했다. 새마을금고는 대출 심사를 위해 감정평가법인을 무작위로 지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토지 주소를 입력할 때 주소 말미에 마침표(.)나 빗금(/) 등을 추가하면 새로운 주소지로 인식하는 기능이 있어, 원하는 감정평가법인이 지정될 때까지 입력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조작이 가능했다. 이렇게 지정된 감정평가법인에서는 브로커로부터 의뢰받은 감정가에 맞춰 검토도 없이 평가서를 작성해줬다.
일당은 대출 실행 즉시 수익을 분배했다. 특히 새마을금고 직원은 특정 감정평가법인을 지정해주는 대가로 1억1,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일당은 1년 치 이자를 명의 대여자의 계좌에 일부러 남겨뒀다. 대출 실행 후 1년이 지나 연체가 발생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범행이 발각되도록 하기 위한 치밀한 장치였던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특경법상 사기, 사문서위조 및 행사 등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양문석 의원이 이용한 상품 역시 새마을금고 기업 운전자금 대출이다. 양 의원은 대학생 딸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속여 대출금 11억 원을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아파트 매수를 위한 차용금 변제에 사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새마을금고의 관리 부실로 인해 금고 내·외부자의 결탁으로 부정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북부지검 관계자는 "대출담당직원 단 한 사람의 일탈만으로도 쉽게 조작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며 "일당의 범행은 서민에게 부여된 대출 기회 자체를 박탈한 심각한 민생침해 범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