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가동되는 핵심 수단은 특별인출권(SDR)이다. 회원국이 IMF에서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유동성이 SDR이다. 1969년 도입됐는데, 심화하던 국제 금융시장의 달러 품귀에 대응하는 가상 통화개념에서 비롯됐다. IMF는 SDR의 필요성을 ‘트리핀의 딜레마’로 설명한다. 예일대 로버트 트리핀 교수 지적대로, 달러가 충분히 공급되려면 미국 무역적자가 늘어나야 하는 반면, 미국이 흑자를 내면 국제 금융계에 달러 가뭄이 생기는 '역설적 상황'을 해결하려면 SDR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 IMF의 최대주주이자 1960년대까지도 경쟁력을 자랑하던 미국은 ‘트리핀의 딜레마’ 해결을 위해 SDR 도입을 주도했다. 제조업 경쟁력에서 밀려나자,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해결 수단으로 딜레마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대대적 감세가 그렇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감세로 10년간 미국 부채는 9조1,500억 달러(약 1경2,679조 원) 늘어난다. 그 부담은 글로벌 시장에 풀린 달러를 통해 다른 나라 시민들도 간접 공유한다.
□ 놀랍게도 이런 행태를 G2를 자임하는 중국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이 확정되자마자, 중국 정부는 8일 지방정부 부채 해결에 12조 위안(약 1조6,700억 달러·2,304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위안화는 미국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무역 결제수단 비중에서 유로화를 제친 데 이어, 미국 달러로만 거래해온 국제 석유시장의 ‘페트로 달러’ 체제에도 도전하고 있다. 위안화 거래 비중이 커질수록, 중국판 ‘트리핀의 딜레마’처럼 중국의 부채 위험이 교역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
□ 동맹국을 현금지급기로 여기는 트럼프, 종신 집권을 불사하는 시진핑의 ‘빚 폭탄' 돌리기는 당장은 증시와 실물경제에 반짝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사례가 보여주듯 지구촌 모두 몸살을 앓는 경제위기로 귀착되거나, 대공황의 마무리가 2차 대전이었듯 대만해협 무력충돌 등 극단 사태를 촉발할 수도 있다. 미중 모두와 긴밀히 얽혔고, 건전재정은 약화하고, 가계부채는 악화하는 우리로서는 가장 심각한 수준의 시나리오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