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마치고 팀원들과 '눈물의 저녁'... 그래도 남은 건 '행복했던 기억'뿐"

입력
2024.11.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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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임호원,
장애인체육대회 남자 단식 9연패
파리서 단식 32강, 복식 8강 탈락 후
팀원들과 '눈물의 저녁'... "뭉클하고 재미있었다"
"결과는 아쉽지만, 후회는 없어.. LA서 메달 재도전"


금금금금금금금금금!

그야말로 금(金)의 행진이다. 지난 10월 29일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휠체어 테니스 단식에서 임호원(26·스포츠토토코리아)은 9연패를 달성했다. 사실상 국내에서는 이제 휠체어 테니스로 임호원을 따라올 자가 없는 셈이다. 6일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만난 임호원은 "체전에선 계속 금메달만 땄기 때문에 (이로 인한) 자신감이나 자극보다 신인 선수들의 기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러 가는 기대감이 더 크다"며 여유를 부렸다.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더 높은 곳을 바라봤던 것도 이 때문이다. 9세 때 사고로 다리를 잃고 11세 때부터 일찌감치 운동을 시작한 임호원에게 파리는 세 번째 패럴림픽이었다.


첫 패럴림픽이었던 2016 리우 때까지만 해도 메달은 언감생심이었다. "리우 때는 어리기도 했고, 경험도 없는 데다 긴장도 많이 해서 메달보단 패럴림픽을 경험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당시 18세였던 임호원은 와일드카드로 패럴림픽 무대를 밟았다.

2020 도쿄 때는 처음으로 자력 진출을 일궈내면서 기대를 높였지만, 시드가 발목을 잡았다. 시드를 받으면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뒤 2회전에서 비시드 선수를 만나 비교적 쉬운 길을 갈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국제 대회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랭킹이 낮아 시드를 받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기대 높았던 파리...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훈련해"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작년 항저우 아시안패러게임 복식에서 한성봉(39·달성군청)과 함께 이 대회 복식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달성한 것. 이후 7월 유럽 원정 대회에서도 재차 복식으로 우승을 차지해 세계 랭킹을 당시 18위(한성봉·현재 55위), 16위(임호원·현재 18위)까지 끌어올렸다. 무더웠던 지난여름, 새벽부터 오전, 오후, 야간 훈련까지 피땀 흘린 결과다. 임호원은 "워낙 더웠던 탓에 땀도 많이 흘리고, 많이 다치고, 감독님께 혼도 많이 나면서 정말 혹독하게 훈련했다"며 "하물며 휴식시간,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한)성봉이 형과 경기 비디오를 보며 분석에 분석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동메달을 바라봤던 단식은 32강에서 탈락했고, 은메달 이상을 기대했던 복식도 8강에서 짐을 싸야 했다. 결국 경기 직후는 물론, 그날 저녁 선수촌 방에서 감독, 트레이너와 밥을 먹다 눈물을 쏟아냈다. 임호원은 "감독님이 먼저 우셔서 안 울 수가 없었다"며 장난스럽게 말한 뒤 "참 뭉클하면서도 재미있는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파리 대회 후 남은 건 '행복했던 기억'뿐"

그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때 흘린 눈물이 후회나 아쉬움의 눈물은 아니었다"고 했다. "항저우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펑펑 울었는데, 그때는 도리어 '아, 이제 안 힘들어도 된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반면, 파리에선 달랐다"는 것이다. 임호원은 "결과는 아쉬웠지만, 시합은 후회 없이 했기 때문에 남은 건 행복했던 기억뿐"이라며 "준비 기간이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다시 해도 괜찮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한 한성봉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했다. 임호원은 "(한)성봉이 형이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경험은 내가 더 많아서 내가 형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막상 함께 해보니 형이 잘 따라와준 건 물론이고, 나를 여러모로 잘 돌봐줬다"고 말했다. 이어 "편한 선수와 큰 대회를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컸고, 재미가 있었다"며 "평소에 서로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실제 시합에서 그런 걸 잘 수행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11일 다시 태극마크 도전... "마지막까지 최선 다하겠다"

임호원은 11일부터 나흘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선다. 패럴림픽 이후 곧장 대만오픈(단복식 모두 우승)에 이어 전국체전까지 치르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 손가락 부상도 있어 상황이 좋지 않지만, 자신감만큼은 여전했다. 그는 "원래 있던 부상이 패럴림픽 이후 심해져서 정밀검사 후 치료를 받고 있다"며 "선발전을 마치면 푹 쉴 수 있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로서의 목표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는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나를 보고 자극받고, 또 나를 라이벌로 생각해주면 좋겠다"며 "나 또한 계속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해 LA패럴림픽에서는 반드시 우리나라 첫 메달을 따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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