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1·5 미국 대선의 최대 수혜자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에게 최소 1억1,900만 달러(약 1,600억 원)를 베팅하며 ‘킹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머스크가 향후 얻게 될 이익이 얼마나 클지는 당장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를 최대 거래처로 하는 항공우주업체 스페이스X와 인터넷 위성 스타링크 등이 얻을 사업적 이익이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내년 집권 2기 정부 출범 이후, 규제 개혁 등을 주도할 ‘정부효율위원회’를 머스크에게 맡기기로 한 터라 반사이익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킹 메이커인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향후 행보도 주목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7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전날 승리 선언 연설에서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수혜자가 머스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연설의 상당 부분이 머스크에 대한 감사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일론은 우리의 새로운 스타이자 미국에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와 같은 천재는 나라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페이스X와 스타링크에 대한 극찬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 언론 대부분은 머스크에 대해 '단순한 고액 기부자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관여로 전례 없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대선 향방을 좌우한 경합주(州) 7곳에서 펼친 저인망식 공략이 대표적 활약으로 꼽혔다. 머스크는 선거운동원을 대거 고용해 1,100만 가구를 직접 방문했고,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전통적 생활 양식을 고수하며 사는 보수 개신교 종파 ‘아미시’ 신도인 유권자를 버스까지 동원해 투표소로 실어 날랐다. 워싱턴포스트는 “농촌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도록 한 전략이 트럼프 당선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머스크가 트럼프의 큰 신뢰를 얻은 만큼, 머스크의 사업체도 큰 도약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근거도 있다. 머스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들어설 정부효율위원회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뉴럴링크 등 6개 사업체를 운영하는 머스크가 정부 규제 탓에 각종 사업의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는 점을 절감한 만큼, 관련 당국 몸집과 절차를 축소하는 데 역점을 둘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례로 보행자 사망 사고를 일으킨 테슬라의 '완전 자율주행 모드'에 대한 연방 자동차 규제 기관의 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규제 장벽에 막힌 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사람의 뇌에 칩을 심는 뉴럴링크 사업과 관련, 미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승인 절차도 앞당겨질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도 호재가 될 수 있다. 이미 전기차 시장을 선점한 테슬라로선 후발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서다.
다만 트럼프의 '대중 무역 전쟁 강화' 정책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테슬라는 지난해 중국에서 전체 매출액의 22.5%인 217억5,000만 달러(약 28조8,000억 원)를 벌어들였을 정도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크다.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미중 무역 전쟁의 중재자뿐 아니라,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트럼프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도 차기 행정부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갖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JD 밴스 부통령 당선자를 부친의 러닝메이트로 발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각료 인선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를 "트럼프 당선자를 대신할 1순위 대리인"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활동했던 장녀 이방카처럼, 이번에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공식 직함을 갖고 활동할 가능성도 크다. 심지어 잠재적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된다. 영국 가디언은 “밴스가 차기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설 경우, 트럼프 주니어를 러닝메이트로 지목하는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이방카는 사실상 정치에서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트럼프가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이방카는 “가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의 중동 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사위(이방카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 역시 지난 2월, "사모펀드 운영에 집중하겠다"며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이방카와 쿠슈너는 트럼프의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공개 행보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