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생이 중국 침공 결의?"... 중국 '혐일' 정서 뒤엔 괴담 방치 있었다

입력
2024.11.11 04:30
15면
<16> '괴물'이 된 중국의 '반일 감정'
전쟁기념관 바닥에 일장기 깔아 놓은 중국
급증하는 일본 혐오 콘텐츠... 당국은 방조
"애국주의, 실업난 등 불안감 탈출구 활용"

지난 6월 22일 찾아간 중국 베이징시 펑타이구 인민항일전쟁기념관. 장쑤성 난징시의 난징대학살기념관과 함께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중국 침략사를 다룬 최대 기념관으로 꼽힌다.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 한국으로 따지면 천안의 독립기념관과 비슷한 곳이다.

기념관 초입부터 폭 18m, 높이 5m 크기의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 노동자, 학생, 부녀자 수십 명이 손에 무기를 쥐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굳게 서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일본에 맞서 싸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본관에 들어서자 일제와의 전쟁사가 연대기별로 펼쳐졌다.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제1·2차 국공합작, 1945년 일본 패망에 이르는 역사가 중국공산당 활약 중심으로 전시돼 있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1932년) 등 중국에서 이뤄진 한국의 독립운동사도 작게나마 다뤄졌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전시관 마지막 풍경이 생경했다. 투명 유리로 된 바닥판 아래에 전쟁 당시 중국이 습득한 일장기와 무기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벽면에 전시했어도 됐을 일장기를 굳이 바닥에 깔아 놓는 바람에 시각적으로 일장기를 밟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였다.

중국 초등학생들이 일장기를 밟고 선 모습을 자랑스럽게 기념 촬영하고 있는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느껴졌다. 중국의 역사 교육은 일제 만행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넘어 공공연한 '증오'를 향하고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일본인 초등학생 대상 흉기 공격 사건' 이후 중국의 '일본 증오 조장' 풍조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중국 특유의 극단적 애국주의, 반(反)간첩법으로 대표되는 외국인에 대한 정서적 반감, 최근 중국 온라인을 뒤덮은 '혐오 콘텐츠'와 '괴담' 등이 중국인의 반일 정서를 '괴물'로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초등학생들이 중국 침공 결의?

지난 9월 18일 중국 선전시 일본인 학교에 등교 중이던 10세 일본인 남자 어린이가 중국인 괴한이 휘두른 칼을 맞고 쓰러진 뒤 이튿날 숨졌다. 석 달 전인 6월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발생한 중국 괴한의 일본 어린이 공격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또 한 번 일본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이어진 것이다.

사건 발생 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범인에 대한 엄중 처벌 요구와 함께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연한 '일본인 학교' 관련 악질적 콘텐츠 단속을 요구했다. 흉기 피습 사건의 구체적 범행 동기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온라인상 '일본인 학교 괴담'이 범행과 무관치 않다고 본 것이다.

일본이 지목한 괴담은 최근 중국 SNS를 뜨겁게 달군 '상하이 일본 학교 동영상'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처음 유포된 이 동영상에는 운동장에 모인 수백 명의 일본인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대표 격으로 보이는 두 학생이 연단 앞에서 오른손을 들고 무언가를 선서한다.

자막 내용은 충격적이다. 일본 초등학생들이 "상하이는 우리의 것이다. 곧 중국 전체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조작된 콘텐츠였다. 운동장에 학생들이 모인 것은 운동회 때문이었고, 홍군과 백군 대표로 나선 두 어린이의 외침은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치자"는 선서였다. 평화로운 운동회 풍경이 자막 한 줄로 인해 '일본 어린이들의 중국 침공 결의'로 둔갑한 것이다. 해당 동영상은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했다.

중국은 '검열'할 이유가 없었다

이 동영상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자 이번엔 '일본인 학교는 스파이 양성소'라는 콘텐츠가 유행했다. 중국 최대 SNS에 '일본인 학교'를 검색하면, '일본인 학교는 왜 24시간 비공개 운영되나', '일본인 학교의 비밀'과 같은 제목의 게시물 수백 개가 뜬다. 이어 "중국 최대 음료업체인 눙푸산취안 생수병에 일본 후지산이 그려졌다"거나 "일본 후쿠시마산 원료가 중국 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들어갔다" 같은 일본 괴담들이 연이어 중국 SNS를 달궜다.

얼핏 봐도 허무맹랑한 내용이다. 반면 댓글에는 "일본인이 중국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중국은 왜 일본인 학교를 허락한 것이냐" 등 괴담에 호응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콘텐츠를 생산했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온라인 여론을 조종, 확대, 축소, 삭제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지적했다. 막강한 검열 시스템을 갖춘 중국 당국인 만큼 일본 혐오 콘텐츠는 일부러 방치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당국의 검열은 중국공산당과 지도자에 대한 비판, 민주화 여론에 집중된다. 과거 민주화 시위를 연상시킬 수 있는 '톈안먼'이란 단어가 당국의 검열 대상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백지시위의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되는 2022년 10월 현수막 시위가 벌어진 베이징의 고가도로 '쓰퉁차오'는 지도앱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 검열은 촘촘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일본 혐오 콘텐츠가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중국 지도부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중국 외부를 향한 증오 조장이었기 때문에 검열할 이유가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일본 혐오 콘텐츠를 생산·만끽하게 됐다는 얘기다.

반세기 전 일본에 "사과 좀 그만하라" 했던 중국

이는 과거 중국공산당의 행보와는 차이가 있다. 마오쩌둥 주석은 1964년 일본 사회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 역사를 "사죄한다"고 하자, "일본군이 침략하지 않았으면 (중국)공산당이 어찌 집권했겠느냐, 일본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덕에 국민당(대만)을 몰아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일제 침략을 비꼬아 말한 것인지, 그의 진심인지에 대한 해석은 지금도 분분하지만 중국은 일본의 만행에 분노하면서도 증오로 이어지지는 않도록 관리했다.

실제로 중국은 1972년 발표한 중일 공동성명 5항에서 "중국은 중일 국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에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고 적시했다. 한국, 대만 등 일제 침략을 당한 다수 국가와 달리 배상을 포기한 것이다. '중국이 승리한 전쟁이기에 배상은 필요 없다'는 게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인식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마오 주석은 만날 때마다 과거사를 사과하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과거는 과거다. 그만 사과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배상을 거부한 중국은 배상에 버금가는 규모의 일본 공적개발원조(ODA)를 두둑이 챙기기는 했다.


"일본 혐오는 중국 정부가 허가한 애국주의"

실용과 실리를 중시했던 중국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반세기 만에 증오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리처드 맥그레거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저서 '중국공산당의 비밀'에서 "1950년대까지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에서 일본의 난징대학살 등이 다뤄진 것은 손에 꼽힌다"고 지적한다. 중국 내 반일 정서가 꾸준했다기보다 근래 증폭됐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유독 지난해부터 중국 온라인상에서 반일 콘텐츠나 낭설이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뤄진 개정 반간첩법 시행과 동시에 각 기관별 방첩 교육이 시작된 것과 최근 '사이버 애국주의'의 부상이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미국 CNN방송도 "(지난해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방류 이후 (중국 내) 일본 혐오 콘텐츠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며 "어떤 경우에는 중국이 일본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온라인상 증오를 부추긴 것으로도 보인다"고 짚었다.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난, 연금 증발 등 중국 내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혐일 애국주의 기조는 확산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애국주의는 이런 불만을 쉽게 잠재울 수 있는 정서적 틀"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최근 급증한 일본 혐오 분위기는 "국가가 승인한 애국주의"라고 홍콩 침회대 커뮤니케이션 스쿨의 로즈 루치우 부교수는 꼬집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