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볼모로 잡은 트럼프... 한미동맹 핵심을 흥정 카드로

입력
2024.11.11 04:30
5면
<2>기로에 선 한미동맹
전 임기 때 독일·이라크·아프간 주둔 미군 축소
공화당 의회 장악으로 법적 방지턱도 낮아져
미국 내 여론 우호적… 대중 견제 활용 가능성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견제'가 극성을 부릴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불똥이 주한미군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은 대북억제와 한미동맹의 핵심이지만 트럼프는 이조차도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한반도 안보가 적잖은 변화와 새로운 위기를 겪을 전망이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방위비 분담금 인상의 볼모로 잡는 경우다. 특히 김정은과의 협상으로 북한의 도발 위협이 줄었다고 판단되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공공연하게 거론할 수 있다. 중국 침공에 따른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갈수록 힘을 얻는 상황에서 악재가 겹쳤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의 볼모가 된 주한미군

트럼프는 대선과정에서 입버릇처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필요성과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한국이 '보호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당국은 이미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2026년 1조5,192억 원, 이후 물가상승률 연동)을 매듭지었지만,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을 앞세워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20년 트럼프는 독일이 방위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며 주독미군 3분의 1의 재배치를 지시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각각 17%, 44% 철수시켰다.

현재 주한미군 규모는 2만8,500명 수준이다. 일본(5만7,000명), 독일(3만6,000명)에 이어 3번째로 많다. 6·25전쟁 이후 1955년 8만5,500명에서 단계적으로 축소돼 2006년 이후 현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 국방장관이 유력한 트럼프 최측근 크리스토퍼 밀러는 "한국은 경제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무기 체계나 안보 지원을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재 한미 관계는 좀 더 평등해질 수 있는 시점이며, 한국이 여전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는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가 됐다"고 주한미군 감축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미 공화당이 의회까지 장악하면서 트럼프의 으름장을 견제할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2019년 미국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따라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축소시키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공화당의 의회 석권으로 트럼프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 국방비 삭감 땐 감축 불가피… 중국 견제에 활용 가능성"

미국 내 여론도 트럼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 외교전문 싱크탱크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미군이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응답은 50%에 그쳤다. 2021년 63%, 2022년 55%에 이어 해마다 5%포인트 이상 줄어들고 있는 것인데, 이는 안보동맹 유지 비용을 미국 경제를 살리는 데 써야 한다는 트럼프의 입장과 일치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10일 "크리스토퍼 밀러는 회고록에서 중국 위협 과장론을 내세우며, 미국 국방비의 40~50% 삭감을 주장했다"며 "이 주장이 현실화하려면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은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억제가 아닌 중국 견제로 돌리려 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사실상 감축이나 마찬가지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트럼프는 주한미군과 핵협의그룹(NCG)을 북한이 아닌 대중 견제에 활용하는 데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면서 "주한미군의 공군력 일부를 대만 문제에 활용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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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