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연구해 보시죠!'... 대학은 그 과학자에게 무한 기회를 줬다

입력
2024.11.06 15:00
24면
국내 첫 종신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석좌교수
노벨상 후보조차 예외 없던 정년 족쇄 풀어
학교측 “90세까지 뽑아 먹을 수 있다 생각”
“죽기 전 세상에 없는 물질 반드시 찾겠다”
“과학은 인류 삶의 질 높이는 ‘선한 기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환호가 채 잦아들기 전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노벨과학상은요? (그런 취지는 아니었겠으나) 준 것 없이 내놓으라는 독촉처럼 들렸다. 일반 국민보다 과학자들 스스로 더 갈망하고 있을 터. 그 무렵 꽤 의미 있는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국내 과학계 처음으로 종신교수가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정년 연장이 큰 화두이지만, 정년 족쇄가 가장 가혹한 건 대한민국 과학자들일 것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다가도 나이가 차면 모든 연구를 접고 짐을 싸야 한다. 고지를 목전에 둔 노벨상 후보들조차 예외 없다. 나이와 국적에 관계없이 과학자를 영입하려 안간힘을 쓰는 다른 나라와는 딴판이다.

국내에서 연구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해외로 떠난다. 얼마 전 국가 석학인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정년 퇴임 후 중국 연구기관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국가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죽했으면 최근 은퇴를 한 김기문 포스텍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정년 퇴직요?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죠.”

그러니 국내 과학계에서 첫 종신교수의 탄생은 일대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국내 대학에서 종신교수 임명은 전례가 없다. 그 주인공은 2012년 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박남규(64) 성균관대 석좌교수(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다. 국내외에서 주요 상을 휩쓸고,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늘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인물이다. 대학 측은 몇 해 전 석좌교수 임명을 통해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늘려준 데 이어 이번엔 종신교수 임명을 했다. 그럼에도 요란하게 홍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더 궁금해졌다. 지난달 22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연구실을 찾았다.


■태양전지에 혁명을 가져오다


과학 쪽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기자로선 우선 그가 개발했다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알아야 했다. 인상 깊었던 어느 과학자의 일갈이 있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연구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자 내놓은 반문이었다. “그렇게 쉬운 연구였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교수님이 2012년 세계 최초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한 것이 태양광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4만 건 가까운 후속 연구를 이끌어냈다는데요.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용어부터 굉장히 낯섭니다. 이해하기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태양전지는 태양 빛을 받아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입니다. 지금까지는 실리콘 소재의 태양전지를 주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보다 값싸고 효율이 높은 물질이 페로브스카이트입니다. 가격은 절반가량으로 낮출 수 있고 전기 에너지 전환율은 그보다 높다고 보면 됩니다.”

-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건가요.

“2009년에 일본 미야사카 교수가 페로브스카이트를 태양전지에 사용합니다. 하지만 전환율(태양빛을 전기로 전환시켜주는 비율)이 3% 수준에 불과했어요. 실리콘은 26%가량이니 턱없이 낮았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전부터 페로브스카이트라는 물질을 공부해온 저는 그때 직감을 했죠. 아, 이게 잘 하면 태양전지에 매우 이상적인 물질이 되겠구나 하고요.”

- 그래서 낮은 전환율을 높일 방법을 찾으신 건가요?

“미야사카 교수의 태양전지는 액체형이어서 쉽게 녹고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냈어요. 그래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서 세상에 처음 보고를 한 겁니다. 당시 전환율이 9.7%였으니까 3배 가까이 끌어올린 거죠.”

- 태양전지 기술 패러다임을 바꾼 거네요.

완전히 묻힐 수도 있던 기술을 세상에 알린 거에요. 이후 연구가 급속히 늘면서 전환율은 10년여 만에 26.7%까지 높아졌어요. 실리콘(26.1%)을 앞섰죠. 태양빛이 100이면 이 중 26 이상을 전기로 바꿔준다는 얘깁니다. 효율 좋은 태양전지를 값싸게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에너지를 만드는 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크게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기도 합니다. 탄소 배출이 없는 깨끗한 전기죠. 2, 3년 뒤엔 상용화가 이뤄질 거고, 추가 연구로 효율은 30%까지 높아질 겁니다. 특히 항공우주 분야에 적용된다면 태양전지 판도를 확 바꿔놓을 거라고 봅니다.”

(전환율 0.1%포인트 차이가 뭐 대단하냐고 여길 수 있다. 만약 지구 표면을 태양전지로 덮는다면 그 미세한 차이가 전기 생산에 얼마나 큰 격차를 불러올지 어렴풋이나마 가늠이 될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정년 문턱은 높았다


그가 지난 7월 한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에게 주어지는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후 밝힌 수상 소감은 큰 울림이 있었다. "과학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와도 같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얻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70세, 80세가 될 때까지 연구하려는 과학자의 목표는 단순히 직무 연장이 아닙니다. 지금껏 발견 못했던 더 우수한 물질을 찾으려는 것이지요. 이들에게는 '당신이 죽을 때까지 연구 한번 해봐라'며 기회를 줘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 그 기회를 본인이 가장 먼저 얻으셨는데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엔 이제 진짜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 막상 죽을 때까지 해보라니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할지 고민이 생기는 거죠. 학교에서 이런 기회를 줬으니,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길을 가는 거니 큰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부담감이 몰려오더군요.”

- 학교에서 평생 어떤 지원을 받게 된 건가요.

“가장 큰 게 연구실과 실험실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떠나는 순간 아무런 연구도 실험도 할 수 없게 되잖아요. 제가 원할 때까지 학생 지도도 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학교 측은 연구비와 해외출장비 등 금전적 지원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성균관대 측이 종신교수를 제도화한 건 아니다. 현재로선 박 교수를 위한 맞춤형 제도라고 보면 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무처장은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온다면 굉장히 유력한 분이고 새로운 연구를 찾아나가려는 의욕도 상당해서 학교법인을 적극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왜 특정인에게만 혜택을 주느냐’는 식의 시샘이 한국적 정서에서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 측이 보도자료도 뿌리고 적극 홍보할 법한데도 그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혹시 세대 간 일자리 다툼처럼 젊은 연구자들이 기회를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맞습니다. 저도 걱정이 되더군요. 향후 연구 과정에서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 이런 기회가 교수님 한 명에 그치지 않고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야겠지요.

“미국 등 선진국은 우수 석학 대상으로 정년 없는 과정을 만들어 주잖아요. 우리도 전면적 시행은 어렵겠지만 창의적인 연구를 이어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는 분들의 경우엔 대학들이 제한적으로라도 시행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80세, 90세까지 연구 기회를 줬더니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점차 확대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없는 ‘플랫폼 물질’을 찾고 싶다


인터뷰 1주일여 뒤인 지난달 30일에서 1일까지 2박3일로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성균국제솔라포럼은 박 교수의 글로벌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1년 박 교수가 만든 이 포럼은 올해로 12회째다. 전 세계 초청 연사만 30여 명, 참석자는 320명가량에 달했다. 이 포럼에 연사로 초청받는 건,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자들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 포럼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2009년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 학교 측에 기여할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학교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회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처음엔 태양전지 전반을 다루다 자연스럽게 페로브스카이트로 넘어온 거죠.”

- 이 분야에선 매우 권위 있는 포럼이라고요.

“맞아요. 이젠 페로브스카이트를 연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포럼에 초청받는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충분한 지원을 못해서 항공권 비용 등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데도 그렇다는 건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 이제 연구를 할 수 있는 수십 년의 추가 시간이 생긴 거잖아요. 어떤 성과를 이루고 싶으신가요.

“늘 고민합니다. 페로브스카이트보다 훨씬 더 우수한 물질이 존재하지 않을까, 같은 구조에 다른 원소들을 넣으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 그걸 플랫폼 물질이라고 표현하셨던데요.

“맞습니다. 여러 지역에 출발한 기차가 플랫폼에 모이잖아요. 태양전지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플랫폼처럼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보고 싶은 겁니다.


■과학자를 자랑스러워하는 사회를 꿈꾼다


“저희 연구비가 10% 삭감이 됐습니다.” 박 교수는 올 초 한국연구재단에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황당했다. “축하드립니다”라니. 다른 기관은 더 많이 삭감됐는데 박 교수 연구실은 덜 삭감됐다는 뜻이었다. 실제 평균 삭감률이 14% 정도였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었다.


- 교수님도 예외 없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피해를 입으셨군요.

“그나마 기초연구 쪽이라 덜 삭감한 걸 다행으로 여기긴 해요. 그래도 연구비가 부족하면 당장 간접비부터 줄이게 됩니다. 박사후연구원(포스닥) 3명 뽑아야 할 거 2명만 뽑게 되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연구자들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이런 정책은 심사숙고했으면 합니다.”

- 우수 인재는 모두 의대로 쏠리는데요.

“의사는 면허증만 받으면 정년 없이 좋은 처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잖아요. 반면에 공대는 취업도, 교수 임용도, 고소득도 어느 것도 보장받지 못해요. 정말 과학을 살리겠다면 처우 개선이 중요해요. 또 자긍심을 느끼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사회의 응원도 필요합니다.

- 어떤 방식의 응원이 가능할까요.

“예전에 일본 지하철을 탔는데 출입문 옆 전단지가 인상적이었어요. 한 대학 교수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 홍보였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과학기술 분야 사람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구나 싶었죠. 일본이 2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환경과 무관치는 않을 겁니다. 과학기술 성과를 적극 홍보해주는 사회가 많이 부럽더군요.”

- 종신교수 배출에도 정부의 역할이 있을 텐데요.

“교육부의 대학원 지원 사업인 두뇌한국(BK)21 사업처럼 시니어 연구자의 특화된 주제에 대해 연구비 지원 등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죠. 대학도 부담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과학은 ‘선한 기부’다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노벨과학상 기대감도 한층 커졌습니다. 가능할까요?

“제가 박사후연구원을 할 때 꿈이 노벨상 수상 그 자체보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거였어요. 연구자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기술이 무엇일까 골몰하면 결과물은 나오지 않겠나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젊은 후배 과학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10년 뒤에 꽃피울 기술이 무엇인지, 10년 뒤에 인류 행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기 바랍니다.

-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자가 되면 의사보다 이런 게 좋다, 홍보하신다면요.

“본인이 하는 다양한 상상이 발견으로 이어졌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 발견에 따르는 보상도 상당하죠. 가장 상위에 있는 게 노벨상일 테고요. 무엇보다 이런 발견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잖아요. 저는 이게 선한 기부 같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정말 죽을 때까지 연구하실 생각입니까.

체력이 닿는 한 끝까지 하고 싶어요. 그래서 세상에 없는 물질을 만들어서라도 찾아내겠습니다.


배 교무처장은 종신교수 임명을 두고 “우스갯소리지만 연구의 우수성이나 의지 등을 봤을 때 대학 입장에서 90세까지 뽑아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건 대학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로 봐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종신교수가 1호에 그치지 않고 2호, 3호로 쭉 이어지도록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지원을 하고서야 노벨과학상을 당당히 주문할 수 있지 않겠나.

박남규 석좌교수는
1960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 미술가, 건축가를 꿈꿨지만 서울대 화학교육과, 동대학원에서 무기화학을 전공하며 과학자의 삶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초전도체 연구를 하며 페로브스카이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차세대 태양전지 선구자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2009년부터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다. 학술DB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위 1% 연구자’(HCR)에 2017~23년 7년 연속 선정됐고, 올해는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최고과학기술인상, 에니(Eni)상 등을 휩쓸었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