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설립된 광주 과학기술원(GIST·지스트), 2004년 만들어진 대구경북 과학기술원(DIGIST·디지스트), 2009년 세워진 울산 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의 설립 취지는 지역산업 경쟁력 제고다. 이들 3개 지역 과기원들은 설립 이후 우수한 연구중심 대학의 위상은 확보했지만 우수 학생과 교수진의 수도권 이탈을 막지 못했다. 지역사회와 화학적 융합을 못해 ‘따로국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지역 과기원들이 최근 지역산업 맞춤형 대학원을 설립하고, 지역 특화 캠퍼스를 조성하는 등 지역 속으로 파고드는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지역 과기원들의 인재 이탈은 심각하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카이스트를 제외한 3대 과학기술원은 올해 학부 신입생 800명 중 휴학생이 137명으로 휴학률은 17%가 넘는다. 교수들의 수도권행도 이어지고 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 9월까지 유니스트 68명, 지스트 17명, 디지스트 26명 등 3대 과기원에서만 111명이 떠났다. 대부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역 과기원이 교수들의 이직을 위한 '징검다리'가 됐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A과기원의 한 교수는 “연구정착지원금 3억 원 등 일반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좋아 젊은 교수들이 빼어난 연구실적을 내다 보니 수도권 대학의 스카우트 표적이 된다"며 "부임 후 자녀가 성장하면서 교육 등의 문제로 지역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스트의 경우 개교 후 15년간 울산시가 매년 100억 원씩의 발전기금을, 울주군도 10년간 매년 50억 원씩 발전기금을 조성하기로 하는 등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젊은 에이스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했는데 역설적으로 교수이탈을 부추긴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지역의 과기원들도 수도권 집중에 따른 후폭풍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그 타개책으로 최근 지역사회와의 상생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디지스트는 지난 5월 경북도, 구미시와 금오테크노밸리에 디지스트공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역 첨단산업을 발전시킬 현장 리더형 고급 공학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내년 개원을 목표하고 학사학위 소지자 중 3년 이상 실무경력자로 지원자격을 제한해 20명 내외를 선발한다. 2년간 반도체ᆞ디스플레이 첨단로봇바이오 등 핵심과목을 중심으로 수요자 맞춤형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수업은 대학원생이 소속 기업의 고난도 문제를 제시하고 디지스트의 교수와 연구원, 현장경험이 있는 객원교수가 팀티칭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역 현장의 엔지니어가 글로벌 공학분야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디지스트와 구미시가 함께 상생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스트는 이와 함께 대구 수성구 알파시티 내 국가디지털혁신단지에 초격차 ABB(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재양성과 핵심기술 연구, 글로벌산학협력을 위한 디지스트 글로벌캠퍼스 조성도 추진 중이다.
지스트도 지역사회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 자율주행 에너지 헬스케어 문화콘텐츠분야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한 AI대학원을 설립한 데 이어 지난 9월엔 AI정책전략대학원도 개원했다. 또 AI 특화 반도체 첨단 공정을 운영하는 AI반도체첨단공정 팹(FAB)도 설계 중이다.
유니스트는 학내 연구지원본부(UCRF)를 두고 학교가 보유한 첨단 실험 실습 정밀계측장비 등을 지역 산업체에 개방해 호평을 받고 있다. 울산지역의 한 차 부품업체는 UCRF분석시스템을 이용해 불량률을 줄여 연 매출을 10% 이상 늘리는 등 2022년 기준 207개 기업이 76억 원의 경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부터는 산업체 재직자 교육과정인 ‘AI노바투스 아카데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222개사 348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서진혁 유니스트 대외협력팀장은 “첨단 인공지능 기술로 전통 제조업을 디지털화하고, 반도체 연구로 역내 정밀화학 기업을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에 진출하도록 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