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속 주인공 영탁(이병헌)은 서울 변두리 황궁아파트를 찾았다가 대지진을 맞이한다. 황궁아파트는 거대 재난에 홀로 무너지지 않는다.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몰려들자 주민들은 외부인을 내쫓고 자신만의 성채를 구축한다. 영탁은 어쩌다 황궁아파트 지도자로 변신하고, 자신의 음습한 과거를 숨긴다. 그는 주민 잔치에서 취기가 오르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가수 윤수일의 대표곡인 ‘아파트’다.
□ 영탁은 알고 보면 아파트로 상징되는 집에 한이 맺힌 인물이다. 그가 재난이 일어난 날 황궁아파트를 찾은 것도 ‘내 집 마련’의 한과 관련이 있다. ‘아파트’의 후렴부 가사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는 영탁의 처지를 알면 더 곱씹게 된다. 노래 ‘아파트’가 첫선을 보였던 1982년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시기다. 강남 풍경을 반영한 낭만적 가사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에는 아파트에 대한 당대의 선망이 스며 있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을 은유한다면 또 다른 한국 영화 ‘드림팰리스’(2023)는 이를 직설적으로 다룬다. 주인공 혜정(김선영)이 남편의 산업재해 사망 합의금으로 아파트 분양을 받은 후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혜정은 아파트 미분양으로 피해를 입자 할인 분양을 주도하고 입주민 사이 물리적 대치가 벌어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황궁아파트 인근 고급아파트 이름이 공교롭게도 드림팰리스다. ‘꿈의 궁전’이라는 작명은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미국 유명 가수 브루노 마스와 함께 최근 발표한 노래 ‘APT.’(아파트)가 세계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8위에 오른 데 이어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2위를 차지했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42년 만에 재건축 성공”이라는 우스개를 들으며 덩달아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애환, 욕망, 급등, 급락 등 부정적 단어가 따르곤 하던 아파트가 세계인의 유희가 되고 있는 신기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