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밝혔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677조4,000억 원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면서 자신의 임기 절반에 대한 소회를 드러낸 것이다.
끝내 시정연설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한 건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시정연설 주체가 누구인지를 두고 혼선을 빚는 일도 발생했다. 총리가 대통령의 연설을 대독하는 형식인지,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이 아닌 총리 명의로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것인지를 놓고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해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 총리 대독 시정연설에서 집권 2년 반 동안의 성과를 먼저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내외 위기에 맞서 지난 2년 반을 쉴 틈 없이 달려왔다"며 △민간 주도 성장 전환 △국가 채무 안정적 관리 △규제 혁파 △징벌적 과세 완화를 통한 부동산 시장 개선 △원전 생태계 복원 △세일즈 외교 등을 언급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의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라며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도 정부 예산과 관련, “정부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은 민생 지원을 최우선에 두고, 미래 도약을 위한 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에 중점을 둬 편성했다”면서 “내년 예산이 적기에 집행돼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법정시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달라”고 당부했다. 예산안의 핵심은 △맞춤형 약자복지 확충 △경제활력 확산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안전한 사회와 글로벌 중추 외교 등 4대 분야에 맞춰졌다.
특히 저출생 추세 반등을 위한 예산 지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그간의 단순한 현금성 지원에서 벗어나 실제 육아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양립, 돌봄, 주거의 3대 핵심 분야를 중점 지원하겠다"며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육아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배우자 출산휴가를 20일로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또 “육아휴직 급여를 대폭 인상하고 동료 업무 분담 지원금도 신설하겠다"면서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경우 65개 상생형 어린이집을 통해 긴급 돌봄서비스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신혼부부와 출산 부부의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을 2억5,000만 원으로 상향하겠다고도 했다.
이 외에도 중위소득을 내년에도 역대 최대인 6.4% 올려 약자복지 확충 기조를 이어가고, 소상공인 대상 스케일업 자금 5,000억 원 지원, 소상공인 채무 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을 40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예산 구상을 밝혔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내년 2조 원 수준의 재정을 쓰고, 병사 봉급을 병장 기준 월 205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정연설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리되지 않아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우왕좌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총리실에서 ‘한 총리가 연설 주체’라고 설명한 반면 대통령실에서는 ‘과거 총리가 참석했을 때도 관행적으로 대통령이 주체였다’는 입장과 ‘총리 시정연설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뒤늦게 총리실이 기자단 공지를 통해 “오늘 시정연설을 하시는 주체는 총리님”이라며 “다만, 총리님이 읽으셔도 국회는 공식 기록인 속기록에 '대독'으로 기록한다. 국회 관행”이라고 수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