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도가 세속의 묵념으로

입력
2024.11.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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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영연방 2분 묵념


종교철학은 침묵과 신을 향한 지향의 행위인 기도를 염격히 구분하지만, 음악이 형식과 내용을 악보로 완성하듯, 종교인들은 묵도(默禱) 혹은 묵언수행이라는 침묵의 기도를 만들어냈다. 그 형식이 묵념으로 제도적으로 세속화한 것은 인류가 경험한 사상 초유의 종말적 하르마게돈(아마겟돈),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영국 국왕 조지5세가 종전 1주년인 1919년 내각의 요청을 수용, 그해 11월 7일 2분 묵념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우리 국민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환기하고 그 역사에 목숨 바친 이들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기 위해 “11월 11일 오전 11시부터 2분간 모든 일상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묵념하는 게 나의 바람이자 희망이다. 그 시간 동안 실행이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일과 소리, 움직임을 멈추어야 하며 완벽한 고요 속에서 모두의 생각이 영광스럽게 숨진 이들을 경건하게 추모하는 데 집중”되게 하자고 당부했다. 첫해 잉글랜드 플리머스의 한 매체는 “도시를 휩쓴 거대한 고요에 시간이 멎었다”고 “시민들도 마법에 걸린 듯 발걸음과 잡담을 그쳤다. 교통수단이 멈추고 공장의 소음도 잦아들었다”고 썼다.

1차 대전 애도의 묵념은 한 해 전인 1918년 5월 영국 식민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장해리 핸즈(Harry Hands)가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 뒤 처음 공식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듬해 5월 14일까지 무려 1년간 매일 정오 조총을 발사하며 3분간 묵념하도록 했지만, 너무 길다는 지적을 수용해 공고를 통해 2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로이터통신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한 영국군 아프리카 지역 사령관 퍼시 피츠패트릭 등이,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이들과 함께 저 의례의 제도화를 건의했다.

한국과 미국 등 대다수 국가의 현충일 묵념은 1분이지만 영연방 국가들은 지금도 북반구의 경우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분 묵념을 고수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