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음이 공개돼 야권에서 ‘정권퇴진’ ‘탄핵’ 공세까지 불거진 가운데 대통령실의 안이한 인식과 태도가 국민의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 공천개입 정황이 육성으로 전해진 심각성을 헤아려도 모자랄 판에 고압적·공세적 언행이 나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름의 확고한 입장이 있다 해도 1일 국회에서 보인 정진석 비서실장의 답변은 납득하기 힘들다. 정 실장은 “정치적 법적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없다”며 “어떻게든 남편 몰래 명씨를 달래는 게, 가족의 심리다. 그저 좋게 얘기한 것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국민 감정에 역행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 전날 명씨와 통화하면서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국민의힘 공관위에 지시했다고 말한 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 등과 관련된 중대 사안이다. 여당에서도 대통령실 대응에 불만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친윤계를 포함해 적지 않은 의원들이 대통령의 직접 해명과 '결자해지'를 거론하고 있다. 여당 광역단체장들로 구성된 시도지사협의회도 어제 윤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국민소통과 국정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권 전체가 윤 대통령 부부와 명씨 간 의혹이 뭐가 더 나올지 몰라 두려워할 지경이 아닌가.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다고 한다. 매우 부적절하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직접 예산안 내용을 설명하며 국회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대통령 시정연설 불참은 11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9월 초 국회 개원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불참 이유로 야당의 피켓시위나 탄핵구호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은 문제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힘겹더라도 국회에 나가 '명태균 사태'는 물론 김건희 여사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경위와 입장을 밝히는 게 맞다. 그게 정 어렵다면 임기반환점(11월 10일)에 맞춰서라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명태균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