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서 보듯 노벨문학상의 권위와 명예가 아름다움만 찬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강의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은 그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안겨 준 공이 크다. 힘들게 길어 올린 현실 묘사의 참혹함은 약자의 편에서 고요하게 기술한 섬세하고 여린 문장 때문에 독자를 더욱 괴롭게 한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1983) 역시 불편한 소설이다. 슈베르트 해석가로 유명한 피아노과 교수 에리카와 잘생긴 공대생 월터 사이의 뒤틀린 사랑과 자기 학대를 다룬 작품으로, 미하엘 하네케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영화 '피아니스트'(2001)로 재조명됐다. 영화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오페라 연출은 물론 영화 속 음악 내러티브에 심혈을 기울여 온 하네케 감독은 슈베르트 연주로 존경받는 에리카와 사랑받지 못한 채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에리카의 불편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영화 속 슈베르트의 음악은 위로가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의 곁을 지켜 줬지만 정작 작곡가 본인의 평생 인정받지 못한 고립감이 아프게 오버랩됐다.
음악과 연계된 또 다른 종합예술인 오페라 역시 불편한 이야기를 통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왕과 귀족, 영웅 찬미나 유쾌한 풍자극도 많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을 바꿔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비극의 무거움에서부터 출발한다. 오페라는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인물에게 주목한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가난, 이념 대립으로 희생을 치르고 조국과 가족, 사랑과 건강을 잃게 된 사람들이다. 약자들의 절규 섞인 아리아와 합창은 때로는 관객 개인의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누구든 약자가 될 수 있다. 약자가 된 개인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비극의 위로는 어떤 희극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진 이때, 한국어로 노래하고 듣는 가곡의 가사나 오페라 대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떠올려 봤다. 식민 통치와 전쟁과 가난으로 정신을 붙잡아야 했을 때, 가곡 가사는 국민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오페라는 꾸준히 창작되지만 초연 기록만 갖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음악적 수준이 부족했던 탓일까. 대본은 문제가 없었을까. 고전은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를 통해 생명력을 갖는다. 태양왕 루이 14세를 위해 썼던 오페라나 귀족의 기념일을 위해 쓰인 어용 칸타타는 특정 시대에만 살다 사라졌다. 푸치니의 위대한 음악은 들을 때마다 눈물을 쏟고 전율하게 만들지만, 백인 남성의 시선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이나 현실에 울림을 주지 못하는 대본의 약점 때문에 발목 잡힐 때가 많다.
한국의 이야기와 정서가 담긴 한강의 소설이 날개를 달았듯 한국어로 부르는 오페라의 꿈도 좀 더 원대하게 품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 가사를 선택해 독일 오페라 시대를 활짝 열었다. 스메타나가 체코어로 오페라를 쓰겠다고 결심한 이래 세계 오페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작품은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그리고 체코어 오페라다. 스메타나에서 드보르자크, 마느티누로 이어진 계보는 야나체크의 '예누파'에서 정점을 이룬 듯하다. 영국 로열 오페라는 2025년 첫 작품으로 '예누파'를 선보인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압도적 활약을 보이는 대세 소프라노 아스믹 그레고리안은 여러 프로덕션을 통해 '예누파'를 노래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흥미롭게도 야나체크의 나라인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은 작품 완성 후 10여 년간 '예누파' 상연을 거부했다. 영아 살해라는 소재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이유였다. 하지만 작품을 보다 보면 진짜 잔인함은 범죄를 방조한 우리 모두의 시선에 있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 사회는 어디까지 수용하고 변화할 수 있을까. 예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예술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