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능 상태, 휩쓸려 갈 건가

입력
2024.11.01 17:33
17면
尹 공천개입 정황 육성, 지지율 19% 진입
여권의 한 축 한동훈에 달린 탄핵 쓰나미
韓, 탄핵 막기 위해 金여사 특검법 내주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탄핵의 판도라가 열린 건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개입 정황이 담긴 육성이 나왔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무기로 활개친 ‘명태균 사태’가 게이트 수준인 가운데, 대중이 결정적으로 들썩일 스모킹건이 나온 격이다. 여권이 “대통령 탄핵사유는 아니다”라며 즉각적 대응에 나선 걸 봐도 정국이 심각한 단계로 넘어갔다. 그럼 헌정파괴의 트라우마를 겪은 우리 국민이 그 혼란을 다시 겪게 될 건가. 아니면 맷집이 탄탄한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며 광장의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건가.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처음으로 19%(한국갤럽)로 내려간 건 일대 전환점에 섰음을 의미한다. 대선 후 2년 반 임기반환점에서 국민의 중간평가로 볼 상징적 지표다.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 탄핵' 전례를 참고하면 향후 관건은 크게 두 가지다. 보수진영 바닥정서를 반영하는 주요 보수매체들의 보도 양상이다. 이미 김건희 여사로부터 돌아선 냉혹한 기류가 윤 대통령에게까지 확산될지가 중요하다. 기류가 번질 징후가 싹트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집권당의 한 축이 여론 흐름에 몸을 던지느냐다.

그래서 정국의 키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쥐고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보수가 괴멸적 나락에 빠진 악몽을 생각하면 자신의 운명도 함께 몰락할 위험을 외면하기 힘들다. 위기 때마다 등장해 “국민 눈높이”를 말했지만 진영에서 ‘배신자’의 길을 택하기 쉽지 않은 딜레마 정점에 서있다. 갈림길에서 결단해야 한다. 탄핵을 앞장서 막는 게 첫 번째 길이다. 그런데 쓰나미에 쓸려갈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보수의 대안으로서 질서 있는 차선책을 본인이 주도해야 한다.

한 대표는 구체적인 두 가지를 기준으로 줄기를 잡을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허무는 정치스캔들로 사안의 무게가 바뀐 점, 그리고 ‘이재명 재판리스크’다. 대통령 지지율은 이미 20%대 마지노선이 붕괴했고 5%포인트 이상 더 떨어지면 앞뒤 가릴 것도 없다. 남은 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위증교사 1심 선고다. 재판 결과와 여론 추이가 나타날 11월 한 달을 주시하며 한동훈은 시간을 끌 것이다.

'탄핵은 내가 막는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은 불가피하다.' 이게 한 대표의 선택이 될 것이다. 국민 분노를 김 여사 거취로 우선 해소하고 진영 붕괴는 막아야 하는 게 유일 해법이란 걸 삼척동자도 안다. 특검법이 통과되고 실제 특검 절차와 수사, 법원단계까지 소요되려면 남은 대통령 임기의 상당기간이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민심이 양해할지 미지수고 이런 가설이 무의미할 만큼 정국은 엄중하고 긴박하다. 탄핵정국은 위법이나 법적·정치적 사유를 따지기보다 ‘통치가 가능한 상황이냐’가 실제론 중요하다고 본다. 외부적 쓰나미에 벼랑 끝으로 몰릴 때, 윤 대통령의 반성과 변화 노력이 실시간 국민에게 전해지느냐가 결정적일 수 있다. 때를 놓치면 걷잡을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 한복판에서 2016년 10월 24일 “오늘부터 개헌 실무준비”를 선언했다. 블랙홀이라며 논의조차 꺼리던 개헌논의로 국면전환을 꾀한 것이다. 이는 국민적 의심에 쐐기를 박는 악수로 작용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기회를 살릴지 실기할지는 윤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시중에선 대통령 하야, 임기단축, 탄핵까지 온갖 주장들이 넘쳐난다. 명태균씨는 “날 잡아가 봐라”며 대통령을 우습게 보는가 하면, 한 언론인에게 “검찰을 못 믿겠으니 특검하자”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정치적 불능상태가 되기 전에, 살얼음판을 걷는 엄중한 인식으로 윤 대통령은 어떤 수습책을 내놓을 건가.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