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북한군 파병 공인된 이상, 한국에 무기 요청할 것"

입력
2024.11.01 17:47
'북한군 며칠 내 투입' 관측 나온 가운데
"그간 신중했지만 이제 무기 얘기할 것"
가장 필요한 무기로 "방공 시스템" 언급
김 국방 "북, 러에 포탄 1000만 발 지원"

러시아와 2년 8개월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에 '무기 공급'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전에는 한국을 상대로 지원을 요구하는 데 신중했지만, 이제는 북한군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참전하는 사실이 공식화한 이상 무기 지원 명분도 뚜렷해졌다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특히 한국에 '방공 시스템'을 요구할 방침이다.

젤렌스키 "곧 한국 찾아, 무기 얘기할 것"

이 같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키이우와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텔레그램 계정에 게시된 글에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먼저 "우리는 한국을 매우 신중하게 대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다"며 "우크라이나를 재정·인도·의료적으로 돕는 것과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인된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 주장이다. 그는 "현재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시민과 맞서 싸우러 온 사람들로서 공식 지위를 얻은 이상, 우리의 요청은 구체화할 것"이라며 "우리 대표단이 곧 한국을 방문하고, 무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썼다. 이어 "포병, 방공 시스템 등을 (요구사항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K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우크라이나 시민과 싸우러 온 군대라는 공식적 지위가 확인된 뒤 구체적 요청서를 낼 것"이라며 '방공 시스템'을 가장 필요한 무기로 꼽았다. 다만 그는 "현재까지 북한 병력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군의 전투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잇따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북한군 8,000명이 러시아 쿠르스크에 배치돼 있다며 "며칠 내 (전투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전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세르히 올레호비치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도 "이번 주 북한군 4,500여 명이 국경에 도착해 11월 중 전투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북한군을 포로로 붙잡을 경우 "(러시아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인과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인도 가능성을 일축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여부에는 "북한군이 우리 시민에게 군사력을 사용한 뒤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방공망? "겨울 '에너지 인프라' 공격 우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공망' 요구는 겨울철 에너지 인프라 공습에 대한 우려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최근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 강도가 크게 낮아졌다며 "전문가들은 이것이 대규모 공격 준비의 징조일 수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산업연구센터(EIRC) 올렉산드르 카르첸코 소장은 "그들(러시아)은 얼어붙는 추위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기온이 떨어질 때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고, 국가 경제와 전쟁 수행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2022년 겨울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을 미사일로 집중 공격했다. 당시 곳곳에서 난방과 전기, 수도 공급이 끊기면서 주민들 생활이 마비됐다. 우크라이나는 올여름에도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받아 전국적인 단수·정전 사태를 겪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공급 규모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포탄은 1,000만 발에 가까운 수백만 발, 미사일은 1,000여 발 정도 지원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겨울철 대공세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나연 기자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