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해상 전투를 모조리 기록하다...'해전 바이블'을 지향하는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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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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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L. 시먼즈 '2차 대전 해전사'

1939년 10월 13일 영국 해군의 심장부이자 북해와 대서양을 잇는 요지인 스코틀랜드 북부의 수역 스캐파플로. 당시 31세의 귄터 프린 독일군 중위가 이끄는 유보트 잠수함이 숨어들었다. 모든 기계장치 전원을 내리고 숨죽인 채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잇따른 어뢰 발포. 정박한 영국 전함 로열오크함 선체에서 파편과 함께 물줄기가 솟구쳤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화염이 치솟더니 천천히 가라앉았다. "전함을 침몰시켰다. 와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개전 초기 독일군이 올린 상징적인 승전보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30여 년간 해군사를 연구하고 가르친 크레이그 L. 시먼즈 명예교수가 쓴 책 '2차대전 해전사'는 유보트의 기습 작전으로 포문을 연다. 2차 세계대전이라 하면 독일군과 옛 소련군이 피의 격전을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나 모스크바 공방전을 떠올리기 쉽다. 시먼즈는 깊고 광활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10여 권의 전쟁사 책을 써 프리츠커 군사저술상 등을 받은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해군사학자다.


해군사학자가 집대성한 세계 해전의 모든 것

책은 '2차대전 해전사의 바이블'을 지향한다. 이 시기 전 세계 모든 바다에서 벌어진 전쟁을 집대성했다. 지상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해상에서의 압도적 우세가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면서다.

승자의 기록에만 충실하지 않은 점도 전쟁사를 다룬 이전의 책들과 다른 점이다. 특정 전장이나 국가를 중심에 놓지 않고, 전황을 입체적으로 넓게 조망한다.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이를테면 나치독일 수괴 아돌프 히틀러를 전쟁광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당시 에리히 레더 독일 대제독이 미국을 상대로 한 유보트 작전을 여러 차례 촉구했음에도 번번히 물리쳤다. 1941년 12월 독일이 결국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 히틀러는 미국과 맞붙을 생각이 없었다고 책은 주장한다. '전쟁 역사상 가장 무모한 결정'으로 꼽히는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 역시 "일본의 대전략 중 한 요소였다"고 짚는다. 자원이 풍부한 남아시아 침공을 앞두고 미 해군이 이를 방해할 수 없도록 진주만의 함대를 무력화하는 게 일본의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실존 인물 살려낸 '전 지구적 인간 드라마'

책은 전쟁에 관여한 국가 지도자와 전략 결정자, 함대 지휘관뿐 아니라 함정 승무원, 기관 정비사, 함포수, 조종사, 상선 선원, 해병 등 모두를 불러낸다. "되도록 역사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게 하려고 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이들의 사진과 지도, 도표 등 시각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다.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군사용어도 정확히 옮겨졌다. 전쟁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