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지급하지 않고 교수들이 연구실에 쌓아둔 학생인건비 규모가 6,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의 연구개발(R&D) 기간과 관계없이 예외적으로 적립을 허용한 결과다. 학생들의 안정적인 생활 보장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난다고 판단한 정부는 적립금 일부를 대학으로 이체하게 하는 개선책을 내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학생인건비 잔액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학생인건비 적립 현황과 개선책을 공개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구책임자 2만4,803명(특례제도 대상) 가운데 1년치 이상의 학생인건비를 적립해둔 경우는 8,708명(35.1%)이다. 이 중 3년치 이상을 적립해둔 연구자도 5,733명이나 됐다. 적립금 규모로 보면 5,000만 원 이상이 3,558명(14.3%)이고, 10억 원 이상도 10명 확인됐다. 최대 적립금은 약 50억 원으로, 이 연구자가 매년 20억 원 규모의 학생연구비를 부담 중인 것을 고려하면 2년치에 해당한다. 총학생인건비 잔액은 2020년 3,484억 원에서 올해 6,000억 원 이상으로 빠르게 늘었다.
정부 연구비 잔액은 연구기간이 끝난 뒤엔 원칙적으로 반납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교수가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못하면 학생연구자들이 생계를 위협받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2013년부터 학생인건비 명목의 연구비는 연구책임자나 대학·연구소 계정에 적립하고 추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는데, 적립된 금액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이다.
정부는 연구 현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1년치 인건비 적립은 허용하고, 이보다 많은 잔액은 20%가량을 대학이나 학과 등 기관 계정으로 이체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연초 학생인건비 잔액이 1억2,000만 원이던 연구자가 한 해 인건비로 4,800만 원을 지급한 경우 연말 최종 잔액은 7,200만 원이 된다. 그러면 잔액에서 1년치 인건비에 해당하는 4,800만 원은 모두 적립하고, 나머지 2,400만 원에 대해서는 20%인 480만 원을 기관에 넘긴 뒤 남은 돈만 적립하게 하는 식이다. 만약 기관 계정이 없으면 480만 원은 환수된다.
기관은 계정에 모인 학생인건비의 50% 이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번 개선책이 시행되면 학생들의 소득이 늘 수 있을 것으로 과기정통부는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해서 인건비를 더 받게 될 학생을 어떻게 선정할지는 기관 자율에 맡긴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제공하라는 취지며,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시그널이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고시를 개정하고, 1년의 유예 기간을 둬 내년 말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최대 300억 원가량의 인건비가 기관으로 넘어올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개선책은 연구생활장려금(스타이펜드)과 별개라고 설명했다. 내년 시작되는 스타이펜드는 대학원생에게 최소 인건비(석사급 80만 원, 박사급 110만 원)를 보장하는 제도다. 논의 초기에 기관별 학생연구비 잔액을 스타이펜드 재원으로 쓰고 부족한 액수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 나왔으나, 공정성 지적이 계속되면서 스타이펜드 재원은 전액 정부가 마련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학생연구비 잔액과 스타이펜드 재원이 모두 기관 계정으로 모이지만 분리 운영될 것"이라며 "최소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스타이펜드로 부족분을 채우는 것이고, 이와 별개로 인건비 잔액도 기관 내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