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 편들기에 나섰던 북한이 파병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와 북한이 지난 6월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이 북한군 참전을 위한 교두보를 만든 셈이 됐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핵개발로 시작된 경제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또 북한이 탄도탄 도발을 하든 위성을 발사하든, 북한에 대한 유엔(UN)의 제재 결의안도 대놓고 보이콧하고 있다.
북한이 참전까지 감행하는 속내는 뭘까. 아마도 북한이 러시아의 전략 기술, 그중에서도 ‘우주기술’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우주개발은 김정은이 집권 당시 지목한 ‘국가 과제’였다. 김정은은 2013년 4월 국가우주개발국(NADA)을 설립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만리경 1호를 우주 궤도에 진입시킨 뒤, 중대 업적으로 치켜세웠다. 푸틴 역시 2023년 9월 13일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대한 우주기술 지원의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주기술이 넘어간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간 우주 자산은 물론이거니와 군사 및 공공 우주 인프라에 대한 안보에도 경고등이 켜지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은 넓다. 그래서 하이브리드전 수행에 용이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주권 국가의 자유’라는 명분하에 대놓고 북한과 뒷거래를 할 태세다.
지금까지 세계는 우주의 평화적 개발에 집중했다. 그런데 민간 및 글로벌 국가들이 우주를 경쟁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군사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한 이중용도 기술(dual-use technology·평화 목적과 군사 목적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의 우주 적용이 본격화했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타국의 우주 자산에 대한 군사공격은 물론, 우주공간에서의 핵 사용까지 시사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 푸틴의 공개적인 공격 협박이 그것이다. 러시아 정보위성 Luch-2(Olymp-2·2023년 3월 발사)는 지구정지궤도(GEO)에서 수개월 동안 타국 위성을 추적했고, 4월 12일에는 타국 정보 위성에 근접 기동(기동 및 근접 작전, PRO)까지 했다. Luch-2 이전에는 Luch-1(2014년 발사)이 14개월 동안 유럽 통신위성(KA-SAT 9A), 미국 정보 위성을 추적해 불과 10㎞까지 접근한 사례도 있었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다른 위성을 직접 공격하는 우주궤도 공격위성(Reaper)이다. 이 위성은 일종의 사냥총으로, 특정 우주 궤도를 따라 돌면서 궤도 내에 있는 우주 자산을 무력화시킨다. 중국은 2007년 11월 지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위성을 요격하는 실험(DA-ASAT)을 실시했다. 또 위성 카메라에 장애를 일으켜 감시 능력을 제거하는 데즐링 및 마이크로파와 입자 빔 무기 등 우주무기 기술 개발과 시험, 우주 무기화 계획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중국은 올해 초 중국 위성을 지구정지궤도(GEO)에서 미국 정보 위성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등 근접 기동을 실시했다. 중국의 공격적 우주무기화 행보는 대만 등에서의 미국 군사 행동 억제, 개입 차단 효과를 얻어 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우주 무기는 가성비가 높은 무기다. 우주 공간에 뭔가를 설치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무력화 공격은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다. 공격인 듯 아닌 듯 ‘살라미 전술’(목표를 향해 조금씩 단계별로 진행하는 전술)식의 하이브리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비대칭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위성에 접근하는 행위도 상당한 위협이 된다. 공격 위성이 불법적으로 접근하면 대상 위성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기동을 하거나 위치를 바꿔야 하는데, 이때 상당한 에너지를 잃는 것은 물론 기본 임무도 제한 받게 된다.
러시아의 우주무기기술 이전이 현실화된다면, 북한도 우주 하이브리드 전쟁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이미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을 통해 우주 진입기술을 축적한 만큼 위성 통제능력 등 우주 기술을 확보하면, 상당한 위협 주체로 부상한다.
물론, 러시아가 위성 통제 기술 등 핵심기술을 타국에 제공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북한의 포탄 제공과 전투원 파병 등 대가로 북한에 제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은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군사정찰위성 기술 이전은 우리가 우려하는 민감한 군사기술 이전 가운데 하나다. 한미는 러시아의 첨단 무기기술 이전을 북·러 간 군사협력 ‘레드라인’으로 여기고 있다.
우주 강국들은 우주 안보와 관련, 각국의 여건과 안보 상황에 따라 확연히 다른 접근 모습을 보인다. 먼저, 미국은 우주에서 기동력을 갖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우주 억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우주에서의 전술적 대응’을 목표로 '빅투스 녹스'(Victus Nox)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라틴어로 ‘밤의 정복자’란 뜻으로, 우주에서 빠른 대응 능력을 구현한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2023년 9월 훈련을 실시했는데, 유사시 △최단 시간 내에 위성을 발사하고 △원하는 궤도와 위치에 배치해 △특정 임무를 수행하고 △폐기까지 진행하는 훈련이었다. 미국은 ‘우주 감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고도 3만6,000㎞의 지구정지궤도를 감시하기 위해 우주에 다양한 감시 자산을 배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2019년 ‘프랑스 우주 방위 전략(SDS)’을 발표했다. 우주 감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자국의 우주 자원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용 우주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은 ‘2022년 방위대강’(방위 지침)을 통해 우주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SDA(우주영역인식) 프로그램 강화 △우주 물체 포집 △우주에서의 위성 정비와 에너지 재충전 능력 향상 등 우주 억제 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우주 안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를 위한 ‘우주 활용’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위성을 활용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고 지상표적을 감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우주 안보’도 고려해야 한다. 우주 비즈니스 자산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에 배치된 우리 자산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우주 위협에도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우주를 감시하는 지상레이더와 함께 우주에 배치하여 우주공간을 손바닥 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우주감시위성도 배치해야 한다. 우주 위협은 상대의 의도와 능력이 파악돼야 대응 수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협 물체를 정확히 식별하는 것이 첫 단계다. 그런데 지상에 배치한 감시 자산만으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알지 못한다. 일몰, 구름 등 기상 조건에 따른 제약도 있다. 우주에 배치한 ‘우주 감시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아직 우주 자산이 많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든다’ 등은 이제 고려 요소가 될 수 없다.
이렇듯 우주 공간은 활용할 공간이자, 방어할 공간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다른 우주 강국의 대비 전략을 살피고 우리의 전략 방향을 점검할 때다.
공군사관학교 학사, KAIST 석사, 남서울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위사업청 사업팀장, 합참방공작전과장, 방공미사일여단장, 남서울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신흥기술과 국방혁신, 미사일전략, 사이버안보, 블록체인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글로벌 국가들의 블록체인 기술 활용과 시사점, 미국의 'MDR'과 시사점 등에 대해 저술했다.